[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앙콜 박수를 받는 환타스틱한 무대위의 갈채를 꿈꿔 본 적이 있는가. 합창에는 주인공이 없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네 파트가 다 함께 불러도 한 사람이 부르는듯한 소리를 내야한다. 모두가 하나의 소리로 화음을 이뤄 곡조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서만 잘 해서도 안되고 자기 목소리만 튀어도 꼴불견이다. 옆사람 소리를 들으면서 노래하고, 공감하며 함께 그 속에 동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의 화음을 만들기 위한 오랜 연습과 부단한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연년생인 우리 집 딸들은 어린이합창단 활동을 했다. 방송국 합창단 창단 멤버로 크리스탈교회를 비롯 국내외 공연을 많이 다녔다. 노래하는 천사들은 지휘자의 손끝을 따라 눈을 크게 뜨고 입꼬리를 올려 예쁜 입모양으로 합창을 했다. 밝은 얼굴과 무대 매너는 자연스레 시선을 끌었고 그로 인해 얻게 된 만남의 복이 만들어준 자산은 어마어마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가 만들어졌다. 유능한 지휘자와 안무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웃는 얼굴을 덤으로 선물 받았으니 말이다. 덕분에 미소천사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랄 수 있는 큰 복을 누렸다.

한복을 입고 우리의 전통 민요를 부를 때는 외국인들도 아리랑 가락을 따라 부르며 부라보! 원더풀! 박수가 쏟아진다. 누구라도 시선이 마주치면 활짝 핀 표정과 자연미소는 상대를 기분좋게 해 준다. 결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하는 말이 한 곡을 마치고 나면 입술이 부르르 떨리고 턱이 아플정도라고 한다. 반복되는 연습과 훈련의 결과다. 웃는 얼굴 조차도 훈련에 의해 만들어진다니 하물며 우리네 삶 가운데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을까?

악기나 재료비가 들지 않고 가성비가 있는 합창이 좋아 나 역시 오랫동안 그 속에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게 있는 작은 달란트로 봉사할 수 있는 취미이자 특기다. 기본적인 발성을 통해 폐활량을 늘리고 노래에 대한 피드백도 배울 수 있는 더하기의 삶은 매 순간이 기쁨과 감사다. 무대마다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또 하나의 드라마틱한 시간들이었다. 반평생 이상 알토파트 자리를 지켰다. 이제는 소리를 듣고 왠만하면 화음을 맞출 정도가 되었다. 리듬을 타고 노래하며 가사를 통해 쌓였던 스트레스가 말끔히 해소되어 마음까지 치료되니 일석이조(一石二鳥)다.

소프라노가 합창곡 전체를 이끌고 가는 힘이 있다면 알토는 낮은 소리로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 다른 소리에 묻혀 들리는 듯 들리지 않은 듯 안정된 화음을 이루어 누군가에게 조용한 메시지를 준다. 아래에서 협력하며 하모니를 맞추는 알토음을 내는 사람 역시도 그런 성정(性情)을 지닌 것 같다. 크게 자기 소리를 내기보다는 대체로 양보하고 받쳐주고 튀지 않는다.

소프라노는 노래의 색깔을 뚜렷이 나타내는 높은 음역대로 개성이 강하다. 그에 비해 앝토(alto)는 여성파트의 저음으로 듣기에 편하고 부르기도 편하다. 부드러운 소리와 음색 그대로 얼굴도 성품도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 한 것이 신기하다. 또한 알토는 상대를 세워주는 역할을 한다. 옆 사람의 소리를 들으며 내 소리를 내는 알토음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알토파트의 사람들은 변덕스럽지 않고 한 가지 일을 오래도록 성실히 감당하는 진득한 면이 있다. 여간해 다른 사람들과 다투는 법이 없으니 인간관계도 오래간다. 돕는 역할이 소리와 비례 하는가 보다.

이경영 수필가
이경영 수필가

자연 속에서도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가 파트별로 노래한다. 이른 아침 산새들이 재잘대며 소프라노로 노래하면, 졸졸졸 시냇물이 알토음을 낸다. 종달새의 지저귐이 테너라면 바람 소리 파도 소리가 베이스음으로 조화를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 미 솔 3도 화음을 울릴 때 도와 솔 소리를 들으며 미 소리를 내는 것이 알토다. 그다지 튀지도 드러나지도 않는 절대음감 알토(alto)를 나는 사랑하고 예찬한다. 그 소리를 이어가는 우리 아이들 그리고 손주들까지 다함께 도 미 솔 화음(和音)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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