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 경영지원본부장·수필가

잎이 꽃처럼 화려한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단풍나무 붉은 잎이 가을볕이 서려 곱게 핀 봄꽃처럼 화사하다. 단풍잎은 머지않아 낙엽이란 이름을 달고 바람결에 꽃잎처럼 흩어지리라. 11월은 시월의 붉은 빛을 품고 성큼성큼 다가왔다가 바통을 쉬이 넘긴다. 피부에 닿는 기온도 미처 더위를 벗기도 전인데, 갈옷을 입으라고 널을 뛰고 있다. 마치 계절을 피부로 느끼는 내 마음처럼 흔들린다. 잎이 지기 전에 단풍 구경을 떠나야만 할 듯싶다.

11월의 풍경은 극과 극을 달린다. 나무의 잎을 관찰하면 알 수 있다. 나뭇잎은 무서리에 봄꽃이 화르르 피었다가 스러지듯 푸른 잎도 시르죽어 바닥에 낭자하다. 상록수를 제외한 나무는 대부분 나목이 되리라. 잎으로 채움과 비움, 생성과 소멸, 화려함과 담백함으로 극을 달리는 그 형상과 느낌을 볼 수 있다. 11월은 유·무有無의 시공간을 오지게 건너가는 달이다. 갈잎의 행방으로 채움과 비움을 처절히 각인시킨다.

과연 내 나이는 어느 달에 머물러 있을까. 스스로 가늠하자니 마음은 열정이 넘치는 팔월이라 우기지만, 육신은 점점 노화하여 시월 끄트머리나 11월쯤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직은 떨켜가 되지 않은 상태, 낙엽이 지기 전 잎은 가지를 애써 붙들고 있는지도 모르리라. 이런 생각이 돌기까지는 작가의 삶이 많은 영향을 주었으리라. 글을 쓰지 않았다면, 내 삶의 기록은 폭풍에 휩쓸리듯 어디론가 흩어져 흔적 없이 사라졌으리라. 이렇듯 나무를 바라보며 깊은 성찰과 사유에 들지도 못했으리라.

11월은 어머니의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달이다. 깊은 심안의 눈을 뜨게 한 것은, 지독한 그리움이다. 서른여섯에 어머니를 여의고 맏이의 중책을 실감하게 된다. 어머니를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문장으로 녹아들어 작가의 길로 인도한 것이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수많은 직업 중에 글을 짓는 업業이니, 이보다 더 품위 있고 수준 높은 업이 어디 있으랴. 글을 쓰며 잊혔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자주 뒤안길을 돌아보며 성찰하니 삶이 유연해지는 느낌이다.

어머니가 꽃을 가꾸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다. 마당에 핀 채송화, 나팔꽃, 봉선화, 해바라기, 국화 등속의 토종 꽃이다. 아마도 꽃을 바라보는 그 순간이 바로 어머니에겐 숨통을 트는 시간이었으리라. 지금쯤 마당에는 국화 향이 가득하고, 미루나무 이파리도 노랗게 물들어 낙엽이 지고 있으리라. 이러구러 세월이 흘러 기와집에서 머물던 그 시절, 마당 넓은 집을 몹시 그리워하는 나를 발견한다. 마당이 없는 공간 탓만 하던 내가 화분에 토종 꽃씨를 뿌려 꽃을 즐기고 있다. 더불어 지인에게 꽃씨를 나누는 삶으로 거듭난다. 묘시의 푸르스름한 경계와 동살을 향유하는 여유도 생긴다. 앞산 솔숲에 소나무가 옷 벗는 소리, 솔잎이 떨어지며 제 살 부딪는 소리도 들리니 먹먹하던 귀도 열린 것이다.

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자연에서 소멸로 가는 길을 복습 중이다. 어떤 문인은 '인간은 자신의 내부에 죽음이 설계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그것을 알기에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는 삶이 소중하다. 이제 나목은 동안거에 들고, 나뭇잎은 적멸에 들 시간이다. 11월은, 소멸에 드는 우주 만물을 위하여 두 손 모아 비손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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