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내 살아 온 날들을 돌아본다. 스스로 자신을 상징하는 낱말로 "변두리"를 쓴다. 내 시선의 출발이요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며, 내 재능의 한계다. 내 부끄러움의 기원이고 지워지지 않는 내 정체성, 소심함의 근원이다. 말이 길뿐, 한 마디로 못났다는 게다.

주변에 많은 잘 난이들을 본다. '그렇군' 하다가도 곰곰 생각하면 주눅이 든다. 미국 프로야구에서 활약하는 일본 선수 중에 투·타에 모두 눈이 부신 이가 있다. 탁월하다. 대단한 투수에 걸출한 홈런타자의 기록을 이어간다. 그를 보는 미 프로야구 선수들 심정이 어떨까.

어느 한 면 빠지지 않고 학업에 잡기까지 능해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여타분야조차 실력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다. 긴 세월, 수십 년을 한 분야만 파도 이루기 힘든 성과를 쉽사리 성취하는 그들 앞에 초라하다.

철저히 그들 반대편에 서있는 내 얘기를 해 보자. 우리말도 아닌 영어를 오래 붙들고 있다. 중학교 때는 교과서 밖에서 내는 시험은 넷 중에 골라 하나를 맞출 확률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발음과 악센트, 문법 문제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비슷한 세대를 사는 한국인치고 영어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이들이 얼마나 될까? 이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긴 세월을 허송했지만 CNN은 차치하고 어린이 대상 방송도 잘 들리지 않는다.

학창시절 운동을 잘못해 반은 의도적으로 탁구를 쳤는데 체계적으로 익힌 게 아니어서 실력이 그다지 늘지 않았다. 그래도 삼십 년을 족히 헤아리는 구력인데 제대로 코치 받는 이들이 육 개월이면 나를 넘어서니 분통터질 일이다. 이런 저런 사정도 있어 몇 년 전에 아예 때려치웠더니 가끔은 건강을 위해 그거라도 지속할 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것들을 열거하는 건 내게 한없는 일이다. 다른 이들이 잘하는 것 중에 내가 웬만큼 하는 걸 찾기 어렵다. 한 때는 이런 일들을 내 노력 부족으로 여겼는데 여간 괴롭지 않았다. 이제는 내 태생이 그렇다 생각하니 마음 편하다. 지난날에는 일상생활과 인간관계에 여러 어려움이 있었고 자존감 유지도 힘겨웠지만 이제 정리가 되었다. 내 부족과 단점 덕에 이나마 살고 있다고 위안 삼는다. 좋게 보면 그 분야는 내가 할 수 없다는 걸 분명히 안 셈이다.

"자신보다 조금 아래를 보고 살라"고 한다. 저런 사람도 열심히 사는데 내 처지에 '불평할 게 뭐가 있어, 이만하면 된 거야' 하는 생각으로 살라는 게다. 그런가 하면 자신보다 높은 곳에 눈을 두고 살라고도 한다. 그들에게서 자극을 받아 열심히 해서 뭔가 이뤄보라는 고언일 게다. 내게는 눈 들어 보면 열등감과 패배의식, 아래를 보고는 우월의식과 자만심, 그 사이를 오가니 난감한 일이다.

차라리 눈을 감아야 할 것 같다. 다른 이와 비교할 게 아니라, 내면에 침잠해 십년 전 자신과 오늘의 나, 오년 후 원하는 내 모습을 그려놓고 애쓰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시대적으로 살펴보면 조선시대 그 누구도 오늘 내가 누리는 삶을 향유하지 못했을 게다. 철없이 과일을 먹고 맛있는 것들이 주변에 널려있다. 한 여름 에어컨에 자동차를 타니 그 시대 누가 그 호사를 누렸을까?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청소기 세탁기 밥솥에 컴퓨터까지 옛 사람들이 깜짝 놀랄만한 삶을 살고 있다. 그 옛날 장수들이 천리마로 하루에 천리를 갔다지만 원하기만 하면 하루에 수 천리를 가고도 끄떡없는 승용차를 가지고 있다. 저녁에 주문하면 새벽에 가져다주고 편지를 읽었는지 확인할 수 있고 곧 바로 답장을 받을 수도 있다.

이제는 눈 감고 자신을 돌아보면 어떨까? 목적지를 정하고 스스로의 속도로 나아감이 현명하지 않으려나. 타인의 성취에 배 아파하지 말고 내 기준으로 평가하면 족하다. 영어 듣기가 되지 않으면 독해로 방향을 돌리든가, 아니면 짧은 문단을 온전히 듣는 것으로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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