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주남 청주시주거복지센터 사무국장

'집다운 집'은 어떤 집일까?

청소년기 자녀 2명을 키우는 엄마인 나에게 '집다운 집'은 부모와 자녀들에게 독립된 공간이 있고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많고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집, 쯤으로 정의된다.

그럼 아이들에게 '집다운 집'은 어떤 집일까? 주거복지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이 말하는 집다운 집은 제 각 각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하나 있었다.

"우리집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파자마파티를 하고 싶어요."

- 산 속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오솔길이 집 안에 있다. 작아진 옷, 뜯지 않은 택배, 어디에 쓰는 거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이 거실, 안방, 아이방 심지어 주방까지 가득 쌓여 있어 짐을 치워가며 요리조리 움직이다 보니 오솔길이 생겼다. 아이의 방은 어느새 창고가 되었고 학교에 다녀온 아이는 등을 기대어 쉬거나 학습을 할 수 있는 공간이 그 어디에도 없어 집 밖을 배회한다.

- 깜깜한 밤이 되었는데 방에 형광등을 켜지 못한다. 여름 장마에 지붕에서 샌 물이 형광등 주변에 가득 고여 있어 불을 켜면 감전사고가 일어날 것 같다. 천장부터 흐른 빗물이 벽을 타고 내려온 자리에 곰팡이가 생겨 냄새가 방안 가득하다. 어두운 마당을 지나 화장실을 갈 일이 벌써 걱정이다. 부모님은 스스로 집을 고칠 형편이 안되는데 나라에서는 자가주택이 아니고 임대주택이어서 집수리 지원이 안된단다. 화장실이 외부에 있어서 주거환경이 국가에서 정한 최저주거기준 미달이어서 언제든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할 수 있다고 하는데 농사를 짓는 부모님은 이 지역을 떠날 수가 없다.

- 세 자녀가 청소년기가 되니 식비도 교육비도 늘어난다. 엄마가 혼자 벌어서 생활하고 있어 주거비라도 아끼려고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했다. 아이들 학교 근처에 4식구가 입주 할 수 있는 집은 방 2칸 구조의 전세임대주택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이사를 했다. 사춘기가 된 아이들이 각자 내 방을 갖고 싶다고 한다. 온라인 학습을 해야 하는데 각자의 학습기 소리가 서로 시끄럽다. 욕실이 하나여서 같은 시간에 등교하는 아이들 셋이 매일 전쟁같은 시간을 보내고 등교를 한다. 엄마는 야근을 해서 막내딸 혼자 집에 있는데 고등학생 첫째 아들 친구들이 좁은 집으로 굳이 놀러 온다고 한다. 그럴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호기심도 많고 성장이 활발한 시기의 아이들이기에 혹시나 딸이 걱정될 때도 있다.

이 아이들에게 집이 친한 친구들과 함께 편하게 누워 밤새 좋아하는 연예인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하며 신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

'집'은 옷과 먹거리와 함께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 요소로 기본적인 욕구이며 동시에 권리이다.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적절한 주거지 및 정주환경에 거주할 수 있는 권리'인 주거권. 2015년에 주거정책 관련 법 체계의 최상위법으로 제정된 [주거기본법]에서는 국민의 주거안정과 주거수준의 향상을 위해 이 주거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라고 불리는 아동들에게도 당연히 주거권을 보장해 줘야 한다. UN은 [아동권리협약]을 통해 부모와 국가가 아동의 주거권을 보장해 줄 것을 규정짓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9년 [아동주거권 보장 등 주거지원 강화대책] 발표하며 아동 주거권을 실현하고 아이들에게 집다운 집을 제공하기 위해 맞춤형 주거지원 종합대책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다만 보편적 아동 주거권 실현이라기 보다는 다자녀가구, 보호종료아동, 비주택 거주 가구 아동에 한정적으로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 및 정착지원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처럼 모든 아이들은 주거권 보장을 통해 내가 살고 싶은 곳에서 물리적·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해야 하고 더 나아가 미래를 꿈 꾸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 아동 스스로 주거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도, 소유 할 수 있는 자격도 없기에 관련한 제도와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아동 가구를 대상으로 주거서비스를 지원해보며 생각한 몇 가지들을 제안해 본다.

첫째, 아동주거비 지원을 제안한다.

경기도 시흥시는 '시흥형 주거급여'를 시행하며 2019년 부터 아동가구에 대한 급여액을 만 18세 미만 아동 1인당 기존 지원금액의 30%를 가산하여 지급하고 있다. '시흥형 주거비 지원 대상 아동가구 실태조사 및 정책 효과 연구(한국도시연구소)'에 따르면 88.5%가 아동주거비 지원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도움이 되었고 61.9%가 주거환경의 변화에 긍정적으로 답하였다.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 밖에 존재할 수 없는 아동이기에 가족의 주거환경의 변화가 곧 아동의 주거환경 개선으로 연결되기에 경제적 지원은 필요하다고 본다.

둘째, 아동 가구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제안한다.

아동가구의 특성을 고려하여 매입임대주택은 동일한 면적이더라고 방의 개수 확대하여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하여 공급하고 전세임대주택은 지원금을 상향하거나 주택 제공 기준을 면적이 아니라 방의 개수로 변경한다면 최저주거기준도 충족하고 아동의 주거만족도가 높아질 것이다.

셋째, 거주 지역 맞춤형 주거지원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주거환경이라도 아동의 생활권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 주택의 소유여부를 떠나 아동이 현재 살고 있는 지역의 특성에 맞게 최소한의 주거기준은 충족시키는 주거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넷째, 아동주거권을 권리로서 실현해야 한다.

정주남 청주시주거복지센터 사무국장
정주남 청주시주거복지센터 사무국장

아동의 현재 환경은 아동 발달과 미래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지자체별 주거지원 조례의 주거지원 대상에 아동 관련 가구를 포함시키는 등 정책으로 아동의 주거권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아이에게 집은 우주가 되고 그 속에서의 경험은 아이가 꿀 수 있는 꿈의 크기가 된다.

모든 아이들이 집다운 집에서 살면서 조금씩 조금씩 꿈을 키워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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