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오은영 아동주거권보장네트워크 청주종합사회복지관 과장

지속적인 기침으로 학교 결석이 잦았던 인영이(가명)네 집에 실내 공기 질 측정 컨설팅을 의뢰한 일이 있었다. 인영이네 집은 복지관과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도로보다 낮은 지대에 위치한 오래된 단독주택이었다. 컨설팅 결과 실내 환경개선 공사로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워 거주지를 이전해야 한다는 권고를 받았다. 하지만 각종 채무에 시달리던 인영이네 가정 형편상 이사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주거지 이전을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진행하는 아동주거지원사업을 알게 되어 어머니께 안내를 드렸다. 인영이 어머니는 지적장애가 있었지만 딸을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애틋했다. "인영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만 있다면 어떤 것이든 할게요!" 어머니는 굳은 의지를 보였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전세자금과 이사비용, 인영이를 위한 맞춤 가구까지 도움을 받아 주거지를 이전할 수 있게 되었다.

2014년 주거실태조사연구 보고서(국토교통부, 2014)에 따르면 수도권이나 광역시가 아닌 도 지역 거주가구이거나 소득수준이 낮은 가구일수록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의 비율이 높은 경향을 보였다. 저소득층에게는 최저주거기준에 만족하는 집을 찾기 어렵고, 만약 적합한 양질의 주택을 찾았다고 해도 보증금이나 월세 등 주거비용이 부담스럽다.

다자녀 가정의 경우 가구 구성별 최소 주거면적 및 용도별 방의 개수도 확보하기 쉽지 않다. 수현이(가명)는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을 하며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수현이네 집은 아이들이 8명인 다자녀 가정으로 비대면 수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전자기기가 부족했고, 인터넷환경이 구축되지 않아 비대면수업 자체가 어려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자기기와 인터넷요금을 지원해줬지만, 비대면 수업을 받는데 개별적인 공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서로 뒤엉켜 수업을 받다보니 제대로 된 수업을 받을 수 없었다. 코로나19로 학습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연구결과는 취약한 주거환경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주거환경이 아동 가정에 미치는 영향은 주거비, 냉·난방비등 경제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곰팡이로 인한 알러지 비염, 천식, 아토피 같은 피부질환 등 환경성 질환의 노출로 신체적 질병과 정서 ·인지발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2010년에는 열 가구 중 한 가구(10.6%)가 최저주거기준에 미치지 못했는데 10년 뒤인 2020년부터는 4% 대에 진입해 주거환경이 열악한 국민 비율이 줄었다. 거주 가능성이 좋은 주택으로 이사를 한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최저주거기준 미달에서 주거상향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아이들이 적정한 주거지에 사는 것은 아니다. 전반적인 주거수준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층의 주거여건은 여전히 열악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 힘으로 도저히 주거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가정이 있다. 최저주거기준 미달가구의 판정 시, 침실 및 면적기준 미달가구는 6인 이하 가구만을 대상으로 가구 규모별 미달 여부를 판정한다. 때문에 수현이네처럼 다자녀 가정의 경우 최저주거기준 통계에서도 제외된다. 최저주거기준이 2011년 이후 별도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적정주거기준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지난 23일 오랫동안 아이들을 돌봐온 지역아동센터 센터장님과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1월에 이사를 계획하고 있는 13살 사랑이(가명)는 "아파트에 사는 게 꿈"이라고 했다. 이게 어떤 말인지 물었더니 얼마 전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아이들이 재개발된 아파트 놀이터를 자주 갔다고 했다. 새로 만들어진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면서 좋아했고, 최근 아파트 입주 1주년 행사를 갔는데 초콜릿도 나눠주고 음악도 꿍짝꿍짝, 사람들도 북적북적 기분 좋게 행사를 즐기고 온 아이들이 한 말이라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하며 뒤에 덧붙였던 말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센터장님은 이제 아이들이 그 아파트 놀이터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새로 지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놀이터에 오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이가 느꼈을 상대적 박탈감, 남모르게 얼마나 속상했으면 아파트에 사는 게 꿈이라고 했을지 마음이 아려왔다.

'아파트에 사는 게 꿈인 아이.' 이것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봤다. 이것을 있는 그대로 '아이가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한다.'고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는 사랑이네 집은 청주 구도심 지역의 오래된 단독주택으로 여름에는 덥고, 겨울이면 창문 사이로 외풍이 불어와 추위를 견뎌야 하는 집이었다.

친구들을 데려오고 싶어도 비좁고 열악한 집에 데리고 올 마음이 생길 수가 없다.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 뿐 아니라 지역 주민이 함께 생동감 있게 살아 숨 쉬는 지역공동체, 그리고 깨끗하고 안락한 주거환경- 이 모든 것이 부러웠던 것이 아닐까? 아이들은 집의 의미를 물리적, 내부공간을 넘어 그 이상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인간이 적절한 수준의 주택에 거주하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적절한 생활수준을 유지할 권리(UN경제사회이사회의)',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최소기준을 충족시키는 주택에 거주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주거권이라고 하는데, 아동에게 주거권은 건강한 발달에 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주거에 대한 권리는 (a) 점유의 법적 보장, (b) 서비스, 시설 및 인프라에 대한 가용성, (c) 비용의 적정성, (d) 거주 가능성, (e) 접근성, (f) 적절한 위치, (g) 문화적 적절성을 포함한다.? 아동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우리는 아동의 권리에 기반한 주거복지정책을 만들고 개발해야 한다. 살기 좋은 주거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안전성, 보건성, 편리성, 쾌적성, 지속가능성 등 많은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따뜻하고 안전한 집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지역사회가 함께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은영 아동주거권보장네트워크 청주종합사회복지관 과장
오은영 아동주거권보장네트워크 청주종합사회복지관 과장

아동이 거주하는 주거환경은 정서적, 신체적 건강과 학습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이러한 격차는 사회적 상승기회까지 박탈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 주거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아동과 가족의 주거권 보장을 도와 아동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좋은 주거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단순한 주거안정과 주거수준의 향상이 아니다. 물리적·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수 있고, 적절하고 안전한 집은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희망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2023년 새해에는 행복하고 즐거운 집에서 살고 싶은 아이들의 소망이 모두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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