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지난 주 강의가 있어 아내와 함께 변산에 다녀왔다. 강의를 마친 후 귀가 길에 예전에 먹었던 소고기무국이 아른거려 군산에 들렀다. 소고기와 무가 지닌 본연의 고소한 향미가 고스란히 배어있고, 담백하면서도 시원했던 국물 맛이 미각을 자극했다. 휴가철 탓에 번호표를 받고 한 시간 가량 기다렸다가 소고기무국을 처음 먹게 된 날 한 숟가락 떠먹었을 때 느꼈던 강렬한 맛에 중독된 듯 이끌렸다. 미각을 강렬하게 자극했던 풍미에는 아무리 멀어도 찾게 만드는 유혹의 마력이 있다.

어찌된 일인지 이번에 먹을 때는 처음 먹었을 때 느꼈던 감동만큼 감칠맛이 덜했다. 소고기무국의 맛에 대한 기대감이 워낙 커서인지, 주방장의 요리법에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몸 상태와 날씨가 그 때와 달라 입맛이 다르게 느껴진 것인지, 시장기가 반찬이라고 그 때보다 시장기가 덜할 때 먹어 맛이 반감되게 느껴진 것인지 아리송했다. 어찌됐든 소고기무국을 처음 먹었을 때 강렬하게 느껴졌던 고상한 맛만은 진국으로 여전히 미각에 열렬하게 남아있다.

사람도 오감을 통해 뼈저리게 상처를 받거나 고통을 겪으며 경험했던 일들은 오래 기억된다. 특히 생후 최초에 부모와 교감했던 감정과 정서적인 친밀감은 아이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게 되고 무의식속에 쌓이게 된다. 유아기 때 부모와 경험했던 관계 방식은 패턴으로 고착화되고 습관화되어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며 살아가게 된다. 프로이트 이래로 현대 정신분석에서는 어렸을 적에 양육자와 경험했던 감정과 관계가 미성숙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성숙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본다.

누구나 자신이 생후 직후나 유아기 때 부모와 어떤 감정을 어떤 수준으로 교감하며 성장했는지, 관계를 맺을 때 감정을 공감 받거나 수용 받으며 성장했는지 등 양육과정에 대해서 듣지 못하거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설령 어릴 적에 나타났던 자신의 기질이나 성향, 경험했던 일들에 대해 부모로부터 들었던 말들이 사실과 다르게 왜곡됐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더군다나 부모가 자식에게 "너는 이기적이고 냉정하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세다."라고 했던 말들조차도 부모가 자신의 열등감을 자식에게 투사시키거나 자식을 자신의 뜻대로 통제하고 휘두르기 위해 만들어낸 프레임일 수 있다.

생후 최초의 기억이 자신의 심리적인 기질과 성향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거나 양육과정과 양육환경이 어땠는지를 인식하는데 단초가 될 수 있다. 어릴 적에 부모와 충분하게 감정을 교감하지 못하며 성장했거나 관계의 방식이 존중받기 보다는 무시당하고 통제받는 패턴이었다면 심리적인 결핍이 무의식속에 겹겹이 쌓이게 된다. 평소에 성숙한 성인으로 지내다가도 마음속에 감춰진 상처와 고통이 건드려지는 순간 의식적이고 이성적으로 반응하지 못하고 유년기로 돌아가려는 미성숙한 퇴행적 행동이 튀어나오게 된다. 유아기 때 부모와 경험했던 정서적인 친밀감과 유년 시절에 상처 받았을 때 자신이 반응하고 선택했던 행동 방식은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영향을 끼치며 부침을 겪게 만든다.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사람의 됨됨이는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기도 하지만 어렸을 때 경험했던 부모와의 관계가 절대적이다. 그렇다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어린 시절 결핍이나 상처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음식의 맛이 변하지 않고 한결같을 때 진국이라 말하듯, 관계에서도 감정의 기복에 따라 휘둘리지 않고 늘 마음을 내 예의를 갖추고 존중해주는 사람을 일컬어 진국이라 칭하고 평한다. 어릴 적 결핍으로 형성된 미성숙한 자아를 자신이 성찰하여 자각하고 성숙한 자아로 바꾸려는 노력을 진력하게 될 때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고 진국인 사람이 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에는 미성숙한 자아를 성숙한 자아로 바꾸기 위해서는 평생 애써야 되고 지속적으로 해야 할 과제라는 심리학적인 지혜가 담겨있다. 음식에 구수한 풍미가 있다면 사람에게는 고상한 품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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