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계단참에 붉고 노란 꽃이 피었었다. 꽃씨를 사다가 손녀에게 여러 종류를 심게 했다. 두세 주 지나도 싹이 트지 않았다. 날마다 바라보다 다시 씨를 사다 뿌렸다. 한두 개 싹트더니 어느 순간 셀 수 없이 돋아났다. 초여름부터 피고 지기를 거듭하더니 이제는 거무죽죽하다. 한때 아름다움을 보여주더니 세월과 함께 후줄근한 모습으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한편에 큰 화분에 담긴 수국이 있었다. 지난해 거금 들여 구입한 것인데 꽃을 볼 수 없어 가게 주인에게 물었더니 월동을 어떻게 했느냐 되짚어 물었다. 아내 얘기를 듣고는 그렇게 하면 꽃이 피지 않는단다. 꽃과 나무에 대해 박식한 그가 부러웠다. 얼마가지 않아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수국에 봉오리가 맺고 미색 꽃이 탐스레 피어나 기대하지 않았었기에 더 반가웠다.

며칠사이 곱던 수국에 누런빛이 번졌다. 원인을 모르니 처방을 할 수 없다. 꽃과 나무도 적절한 지식을 갖고 부지런히 돌봐줄 주인을 만나야 하나 보다. 아직 백일홍과 과꽃을 제대로 구분할 줄 모른다. 아내가 알려주면 '그렇지' 하다가 이튿날이 되면 달라진 게 없다.

이층 층계참이 플라스틱 용기 속 꽃밭이라면 일층에는 흙이 있는 좁지만 진짜 꽃밭이다. 일층에는 과꽃과 봉숭아 분꽃 들이 있었다. 자리한 곳이 어딘가 따지지 않고 최소한의 흙만 있으면 뿌리내리고 꽃피우는 생명력이 놀랍다. 이 땅에 동물들은 다른 생명들을 희생시키며 살아가지만 풀과 나무는 잔혹한 먹이사슬에서 그나마 자유롭다. 뿌리와 잎과 열매를 때로는 꽃들을 누군가에게 빼앗길지언정 남의 생명을 빼앗으려 하지 않는다. 햇볕과 빗물과 공기와 땅속 영양소를 취하여 살아가다 꽃을 피우고 끝내 열매 맺어 주변에 나누는 그들은 이 땅의 평화주의자다.

작은 벌레에 이르기까지 본능적으로 이루는 짝짓기마저 풀과 나무는 초월하고 산다. 아름다운 꽃잎을 활짝 열고 벌과 나비와 바람을 부르대 누가 와서 가루받이를 해주길 강요하지 않고 그 누가 자신의 꿀과 꽃가루를 가져가도 원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낌없이 사랑을 나눠주는 박애주의자들이다.

바람이 몰아치고 비가 쏟아져도 그들은 피할 줄 모른다. 그냥 바람에 부대끼고 비에 젖으며 환희의 춤을 춘다. 때로 줄기가 꺾이고 목이 부러져도 자리에 누울지언정 한 발짝도 비켜나지 않는다. 후줄근한 모습을 하다가도 바람 멎고 비 그치고 햇살이 간질이면 웬만한 부상은 훌훌 털고 다시 하늘 향해 일어선다. 그들은 포기를 모르는 집념의 소유자들이다. 그러기에 식물은 동물보다 강하고 위대하다.

풀과 나무는 종족을 이어가는 멋진 방법을 안다. 그들 중 다수는 맛있는 부분으로 씨앗을 감싸고 색과 향기로 동물들을 부른다. 마침내 맛있는 부분을 내어주고 씨앗들을 옮긴다. 그러니 그들은 지혜주의자들이자 스스로 죽어 후손들을 살리는 살신성인을 펼쳐 보이는 실천주의자들이다.

풀과 나무들에게 인간은 도움이 되지 않는 위험한 존재다. 온 정성 기울여 만들어 놓은 씨앗을 옮겨주지 않고 먹어버리고 약으로 쓴다고 가져가고 사는 곳을 파헤치는 방해꾼들이다. 심지어 그들 삶의 목적이라 할 씨앗들을 과육 먹기에 귀찮다고 제거해 수만 년 내려온 삶의 방식까지 멋대로 바꾸려 한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눈과 코와 입만을 우선하는 어리석음에 취해 산다. 보기 좋고 향기롭고 맛있는 것만을 추구해 개량과 개악을 구분하지 못한다. 마치 만물이 자신들을 위해 존재한다는 아이 같은 허술한 논리를 진리로 안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풀과 나무는 인간의 온갖 패악질에 저항하지 않는다. 서서히 그 결과를 돌려줄 뿐이다. 폭우와 가뭄에도 좋은 날을 기다리며 그냥 참아낼 뿐이다. 생명이 다할 때까지 말없이 견디니 참을성 또한 대단하다. 내리쬐는 햇살에 어제보다 더 많은 풀과 나무들이 누렇게 변해 간다. 그들은 그렇게 다시 의연히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러기에 풀과 나무가 이 땅의 성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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