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얼마 전 청주 한 초등학교에 작가초대를 받아 다녀왔다. 그날따라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볼이 얼얼했다. 4학년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고 학교를 나오니 배가 살짝 고팠다. 혹시나 늦을까봐 일찍 출발하는 바람에 아침을 먹지 않아서 더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청주에서 밥을 먹고 충주로 가기로 했다. 청주에 사는 후배가 만둣국을 잘하는 맛집을 알려준 것이 생각나 그 식당으로 향했다.

그 식당을 찾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살펴보니 모두 만둣국과 찐빵을 파는 가게가 모여 있었다. 바로 옆에 주차 공간이 있어 급하게 주차를 하고 근처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 전이어서 가게는 아무도 없었다. 만둣국을 주문했다. 그때였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듯한 아이들이 15명 정도 들어왔다. 아마도 근처 어린이집에서 온 것 같았다. 정말 추운 날씨라 따끈따끈한 찐빵을 간식으로 먹으러 왔나보다. 나 혼자여서 썰렁했는데 금세 가게가 시끌벅적해졌다.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꼭 음악 소리처럼 들렸다.

"여기 손님이 계시니까 조용히 해요."

함께 온 선생님 두 분 중 한 분이 말했다.

"얘들아, 아저씨는 괜찮아요. 근데 몇 살이에요?"

내가 아이들과 눈 맞춤하며 말하자 '일곱 살'이라며 합창하듯 말했다.

아이들은 찐빵을 주문하고 기다렸다. 서로서로 작은 소리로 속닥속닥 즐거운 표정이다. 만둣국이 나오고 바로 찐빵도 나왔다. 나란히 앉은 아이들 테이블 위에 접시 하나씩, 그리고 그 위에 찐빵 하나가 놓여졌다. 그 모습 또한 얼마나 귀여운지 자꾸 쳐다보게 되었다.

한 개를 다 못 먹는 친구는 선생님이 한 부분을 잘라 더 먹을 친구에게 주었다. 가게 안까지 들어온 햇살에 맛있게 찐빵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평화스러워 보였다.

그동안 찐빵은 내게 평화보다는 배고픔이 먼저 떠올랐다. 처음 직장생활을 할 때였다. 겨울이었다. 버스비도 아까워 아침 일찍 일어나 걸어갔다. 눈이라도 내리는 날에는 더 일찍 일어나야 했다. 쌀도 조금씩, 연탄도 낱개로 조금씩 샀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밖으로 나온 적이 있다. 무슨 서류 봉투를 우체국에 가서 붙이는 거였다. 늘 배가 고팠지만 그날따라 더 고팠다. 마침 찐빵 가게 앞을 지날 때였다. 커다란 솥 두 개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찐빵이 익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예전 뜨거운 찐빵을 호호 불며 양손으로 옮기다가 반으로 뚝 잘라 먹던 생각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때 난 돈을 벌면 찐빵을 배가 터지도록 한번 꼭 먹어봐야지, 다짐을 했다.

그 이후 날씨가 추워지면 붕어빵이나 군고구마와 군밤 등 여러 가지가 생각났지만 찐빵을 제일 처음으로 먹었다. 오래 전 그 찐빵을 그리면서. 하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맛있지 않았다. 아마도 그때의 그 절절함이 사라졌기 때문인 것 같다. 또는 먹거리가 더 다양해져서가 아닐까도 싶다.

찐빵은 배고픔의 기억으로 생각나기도 하지만 고등학교 때 생각도 난다. 그때 분식점에서 만두와 찐빵을 먹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여자 친구와 만두와 찐빵을 먹은 적이 있다.

그때는 왜 그런지 모르지만 천천히 이야기를 하면서 먹어야 했다. 남자 친구끼리 먹으면 나오자마자 입으로 들어가기 바쁜데 여자 친구들과 먹으면 나도 모르게 점잖게 천천히 먹었다. 심지어는 남기기도 했다. 남자 친구들끼리 먹으면 빈 접시도 깨물어 먹을 정도였는데 말이다.

늘 그때 접시에 하나씩 남겨 놓고 나왔던 찐빵이 아까워 죽는 줄 알았다. 그러면서 여자들끼리 먹어도 남길까? 참 궁금했다. 나중에 옆집 사는 또래 여자 친구한테 물으니 헉, 남자들보다 더 많이 만두며 찐빵을 먹는 걸 알았다.

만둣국을 다 먹고 나도 찐빵을 하나 주문했다. 배가 불렀지만 아이들이 하도 맛있게 먹어서도 그렇고 예전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호호 불면 한 입 베어 먹으니 참 맛있다. 사실 후배가 알려준 맛집은 내가 간 맞은편 가게였다. 그래도 찐빵을 단체로 맛있게 귀엽게 먹는 아이들을 보아서 참 즐거웠다. 나 또한 맛있게 찐빵을 먹어서 더 잘 되었다. 잘못 들어간 식당이 오히려 잘 된 것이다.

점점 바람도 차고 추워진다. 이젠 먹거리가 많아져 예전만큼 찐빵의 인기는 덜하지만 내 또래의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찐빵의 인기는 최고일 것이다.

김경구 작가
김경구 작가

조만간 눈이라도 펑펑 내리면 뽀드득 뽀드득 눈길을 걸어 하얀 김이 펄펄 올라오는 찐빵 가게를 가고 싶다.

햇살속 아이들 먹는 모습 평화

배고픔 기억 호호불며 먹던 추억

눈이 내리면 여전히 인기는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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