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찬바람이 옷깃을 스친다.'요람에서 무덤까지'부유하고 풍족하게 오래 사는 것을 사람들은 소망한다. 거기에 일생 동안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까지 더한다. 이웃에게 베풀고 선으로 악을 이기며 보람 있게 살고자한다. 또한 고통없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고종명(考終命)을 꿈꾸며 산다. 건강하고 넉넉하게 덕을 쌓으며 행복하게 오래 살다 세상을 떠나는 것이 가장 큰 복이라는 것이다. 바로 부(富)와 수(壽), 강녕(康寧)과 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 이는 다섯 가지 오복(五福)을 가리킨다. 모든 소망을 이루고 객지가 아닌 자기 집에서 편안한 일생을 마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그 안에 담겨져 있다. 이 모든 것은 가족 공동체로부터 시작된다. 서로 다른 하나의 인격체가 만나 또 다른 하나가 된다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비밀이기 때문이다.

다정하고 부지런한 친정아버지는 보통의 아이를 또 다른 눈으로 바라보시고 칭찬을 많이 해 주셨다. 칭찬을 먹고 자란 덕에 밝은 에너지를 받고 매사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품을 선물로 받았다. 아버지의 눈에는 당신 여식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잘난 딸이었으니 말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은 고소하고도 달콤한 보물단지다. 할 수만 있으면 아흔까지는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씀 하시던 아버지는 여든 일곱 해의 마지막 달력을 끝내 넘기지 못하셨다. 아버지로부터 손주들까지 4대가 함께 할 수 있었으니 그분은 분명 오복(五福)을 누리신 게 분명하다. 살아 온 날의 지냔 시간은 모든 날 모든 순간들이 참 좋았다. 나를 키우고 돌보셨던 아버지와 함께 한 날들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 행복이다. 결혼, 연애, 출산을 포기한'3포세대'의 영향으로 결혼, 출산 연령이 늦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다. 요즘세대에 비하면 세상물정 모르고 사랑 하나만 보고 결혼을 택한 나는 순전하고 어린 신부였다. 대학시절 나이차가 나는 선배님과 러브레터를 주고받는 달달한 연애를 했다. 시골학교 총각 선생님이었던 그는 졸업 후 나의 미래보다는 자신과의 결혼이 우선순위였다. 내 젊은 날을 돌아보면 눈물 날 정도로 부지런히 종종 걸음으로 살았다. 연년생 육아를 감당하기가 너무 버거웠다. 아내로, 일하는 엄마로, 아이를 키우는 일인 다역을 감당해야만 했기에 옆도 뒤도 쳐다 볼 겨를조차 없었다. 네 아이의 엄마로 산다는 것은 헌신 그 자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내 몫이라 여겼기에 그 때는 힘든 줄도 몰랐다.

시집간 딸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가 우리들을 키울 때가 지금의 나보다 더 어린 나이였어요. 제가 아이를 키워보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며 젊은 날의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엄마! 고맙고 감사해요""그랬구나! 그땐 그랬지."새삼스레 지난 날 나를 돌아본다." 인생 허리띠 졸라매고 그만큼 버텨왔으니 고생했다. 참 잘했다. 잘 살았구나."스스로 칭찬 해 주었다.

이경영 수필가
이경영 수필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에 따라 삶의 가치관이 만들어지고 미래가 달라지기도 한다. 눈물고개 고생고개 아프고 힘든 기억은 다 가고 결국 자식만 남는다. 자식이 아무리 효자라 해도 제 자식 낳아 키워봐야 부모마음 안다는 말이 꼭 맞다. 아이들은 손님처럼 휘익 왔다 간다. 창밖을 서성이며 자식들 기다리는 어미 마음은 부모가 되어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 이제 조금은 자신을 위해 다소 이기적으로 살아도 될 듯싶다.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누리지 못한 삶은 혹여 상처 입은 어른아이로 그늘 속에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행복은 순간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즐기고 누리는 것이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교차하는 시간들이 나를 웃게도 하고 눈시울을 적신다. 사랑도 있고 아픔도 있던 삶의 여정이 저물어져 가고 있다. 부지런히 달려오다 보니 어느덧 12월 달력 한 장이 남아있다.

키워드

#아침뜨락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