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밖에는 제법 겨울다운 날씨인가 보다. 수은주를 영하권으로 끌어내린지 며칠째, 눈은 왜 이리자주 오는지, 꼭 필요한 일외는 집에 머물기로 했다. 문득 먼지가 괘나 묻어있는 가족 앨범이 시선을 끈다. 속으로 잘 됐다며 정리도 할겸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젊었을 때부터 하얀서리가 내린 지금까지 사진들을 보니 사진은 말 없는 언어다. 그 속에 진한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녹여져 있으니 말이다.

사십여전의 일이다. 그러니까 우리 부부가 갓 결혼해서 서로 토요일 오후만을 가슴조이며 기다렸던 그시절이다. 일주일동안 얼마나 그리워 했는지, 그 당시에는 시외전화도 우체국에가서 신청하고 전화박스에서 대화를 주고 받던 그때, 전화를 끊고 나면 또 다시 아쉬움으로 가득했던 그때, 그 못다한 말들을 토요일닐 오후에 만나 서로 부퉁켜 안고 반은 웃고 반은 울면서 사랑의 대화를 나누던 그때, 나는 중학교 교사로 충남 공주에서 근무해야 했고 아내는 제천에서 직장생활을 하였기에 눈가에 이슬을 머금은 채 일요일 오후면 아쉬운 이별을 해야 했던 그때, 지금도 생각해보면 왠지 마음이 저려온다,

우리부부는 요즘 밪벌이 부부가 겪는 주말부부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분주하게 양가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는 따뜻한 사랑의 보금자리는 아내의 자취방으로 만들어 놓고 나는 공주에 있는 어느 하숙집을 향하여 가야할 가슴아픈 사랑을 맛보와야 했다. 매주 금요일이면 밤잠을 설치고 토요일이면 수업을 마치자 마자 청소와 종례를 아마 전교에서 가장 먼저하고는 숨가쁘게 달려온 수 백리길! 하지만 설레임으로 가득찬 나는 결코 피곤하지 않았다.

지금생각해 보면 그때만큼 주말이 기다려지고 공휴일이 손꼽아 기다려지던 때는 별로 없었었으리라. 하숙집에서 작은 책상에 놓여 있는 아내의 사진을 보고 또 보고 마음속으로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그때, 창조주께서는 해를 넘기자 귀한 선물인 아들을 우리부부에게 주셨다. 감사하기 그지없다. 아마 꼬마녀석이 갓 돌을 지냈을 무렵이다. 토요일 오후, 그리뭄으로 가득차 들어온 나에게 아내의 얼굴빛은 슬픔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나는 아내의 두손을 마주 잡고 '여보, 왜 걱정거리가 생겼어요' 하고 물으니 아내는 작은 목소리로 '아니예요, 글쎄, 애기가 며칠전부터 심한 열이 나서 고생했는데 지금도 완쾌치 못했어요, 당신 오기전에 꼭 낫게 했어야 하는 데 하며 말끝을 흘리며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때 우리부부는 서로 부둥커 안고 얼마나 흔껴 울었는지 모른다. 얼마동안 실컷 울다가 서로가 서로를 달래는 말을 한다.

'여보, 울지마, 당신이 울면 내 마음이 더 아파요, 내가 너무 당신을 고생시켜서 미안해요. 나도 남들처럼 당신을 데려가 집안일이나 하게 하면 되는 데 말이오, 여기 누워 있는 저 녀석을 봐요, 저 녀석이 엄마는 울래미인가 봐, 하고 놀리면 어떻게 해요 하며 아내를 달래곤 했다.

다행히 나는 다음해 80년 3월달에 나는 도간전출로 충북제천 모 중학교 교사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세월이 유수 같다라고 하더니 그녀석이 벌서 마흔 중반에 접어든다. 의젓한 가장으로 직장생활에서도 사회구성원 역할을 제법 잘 해주고 있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지금도 밖에는 눈이 내린다. 한해의 끝자락인 섣달,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그리고 평범한 하루가 너무나 감사하다. 더구나 고생만 시킨 아내와 같이 살아있음에 더없이 행복하다. 우리는 가끔 지난날 주말 부부의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의 끈을 이어간다.

다시금 생각해 보면 그리움으로 가득찼던 주말부부였던 그때, 행복한 순간들이였으리라. 지난날의 소중한 추억, 사랑의 여운이여, 영원하라, 그때처럼.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