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영옥 수필가

교통사고가 크게 난 적이 있었다.

신호대기 상태에 서 있던 내 차를 뒤따라오던 트럭 운전사가 졸음운전을 하는 바람에 빨간 신호를 미처 보지 못하고 내 차 꽁무니를 들이받아 버린 것이다. 내 차 앞에 또 한 대의 차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던 탓에 졸지에 가운데 끼어버린 내 차는 앞뒤로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순식간에 출동한 119 구급차를 타고 난 병원으로 실려 갔고, 내 차는 어떻게 손을 써 볼 수도 없이 폐차장으로 끌려가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는데 차가 망가져 버린 것에 비한다면 천만다행으로 크게 다치진 않았다.

우체국에 다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병문안을 왔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차 얘기가 나왔고 친구와 함께 근무하는 직원 중에 새 차를 뽑으면서 자기가 타던 차를 판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새 차를 살 형편이 되지 못했던 나는 친구에게 그 차를 내가 살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중고차라고 해도 중고 매매상을 통해 사는 것보다는, 누가 탔었는지, 차에 어떤 문제는 없는지 안심하고 살 수 있었으니까 내 입장에서는 훨씬 좋았다.

그러나 상대방의 입장은 좀 달랐던 모양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차를 팔고 싶다는 것이었다. 혹 나중에 생길지도 모르는 문제에 대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확답을 보낸 후에 차를 보러 갔다.

차의 외양이 깨끗해서 맘에 들었을 뿐만아니라 차의 내부도 튼튼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차 주인은 나에게 차를 팔기로 결정하였고, 나는 그분의 새 차가 나온다는 날에 맞추어 차를 받으러 갔다. 까만색 번쩍번쩍 빛나는 새 차 한 대가 서 있고, 건너편으로 그분이 타고 다니던 소나타가 서 있었다. 부인과 함께 나온 그분에게 새 차에 대한 축하의 인사를 드리고 내가 타게 될 차의 열쇠를 받아들었다. 차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았는데 차 안이 너무 깨끗했다. 전에 차를 보러갔을 때 보았던 겨울 방석은 모두 걷혀 있었고, 가슬가슬한 여름 시트가 새로 깔려 있었다.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는데 그분의 부인이 다가왔다.

"비록 쓰던 시트이지만 깨끗하게 세탁한 것이니까 그냥 써도 될거에요. 맘에 들지 않으면 새 것으로 바꾸시구요. 우리 남편이 어제 몇 시간 동안이나 차를 닦았어요."

그녀의 말 그대로 콘솔 박스, 바닥 깔개, 심지어는 뒤 트렁크까지 티끌 하나 없이 너무나 깨끗했다. 차를 받자마자 세차장으로 달려가려 했던 내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에 부인은 마치 사랑스러운 자식의 얼굴을 쓰다듬듯이 차를 구석구석 만져보며, 급기야는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식구 같은 차를 보내는 심정이었으리라. 차에 대한 살뜰한 그분들의 마음에 덩달아 나까지도 마음이 울컥해져 함께 눈물을 글썽였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깨끗하게 세차까지 해주시고…. 아끼고 사랑하셨던 만큼 저도 조심스럽게 잘 타고 관리하겠습니다. 저도 이 차를 아끼고 사랑할게요."

진심으로 인사를 건네고 차를 몰고 오는 내내 그 부부의 선량한 미소가 차와 함께 따라오는 것 같았다.

김영옥 수필가
김영옥 수필가

저렴한 가격에 차 한 대를 사면서 사람에 대한 감동과 믿음까지도 함께 덤으로 받은 나는 근래에 느껴보지 못한 '살아볼 만한 세상'을 느껴 많이 행복했다. 남에게 건네줄 낡은 차를 그렇게 정성껏 깨끗하게 닦아주는 그분이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이 나를 또한 즐겁게 하였다. 그 한 모습으로도 그분이 하는 공무 처리가 한 눈에 보이듯 정갈하고 반듯한 믿음을 받게 되는 것은 나의 지나친 비약일까? 나라의 앞날에 대한 걱정마저도 일시에 날려버릴 듯한 안도감까지도.

내게 차를 물려준 그 부부의 선한 미소가 묻어있는 나의 소나타는 지금도 나를 따라 다니며 행복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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