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바람이 찬 숨결을 전해오는 시간이면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그리움이 톡톡거린다.

아침에 졸린 눈 비비고 창호지 문에 달린 눈곱 재기 창으로 밖을 보면 온통 하얀 눈으로 덮였던 어릴 적 풍경도 추억이고, 시린 손 불며 마당에 쌓인 눈 쓸다가 못난이 눈사람 만들던 시간도 그립다. 화롯불에 고구마 구워 먹던 그 밤이 그리울 때면 따끈따끈한 구들장에 누워 온종일 쉬고 싶다.

고향 집은 주인이 변했어도 언제든 볼 수 있어서 좋다. 층층시하를 잘도 견딘 집이다. 조상부터 대대로 살던 곳이라 곳곳이 옛 추억 오롯하다. 어릴 적에는 바람 따라 울어대는 창호지 문에 둥근모양의 검은 문고리가 있었다. 손이 쩍쩍 달라붙을 정도로 차가운 문고리를 열면 바로 바깥이었다.

부모님 순고의 세월이 아슴아슴 살아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아 등잔불 켜고 살던 시절, 문풍지를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 윗목에 놓은 물도 금세 얼었다. 아랫목은 군불을 지펴서 펄펄 끓어도 방의 윗목은 냉골이었다.

무쇠솥이 걸려 있는 부뚜막 아래 아궁이에 불을 땐다. 부뚜막에 걸려있는 세 개의 가마솥. 작은 솥에는 국, 가운데는 밥, 맨 오른쪽 큰 솥에는 물이 들어 있다.

마른 콩대를 불쏘시개로 사용하다 보면 타닥타닥 소리가 부엌에 울려 퍼진다. 빨리 타기 때문에 자주 콩대를 넣어주어야 한다. 반 타버린 콩대가 아궁이 밖으로 나오면 반찬 만들던 중에 발로, 때로는 부지깽이로 밀어 넣어가며 군불을 지폈다.

장작더미에서 장작 몇 개 아궁이 속으로 들여놓으면 강한 화력으로 오래 탄다. 장작더미가 옹색해도 괜찮다. 아궁이에 집어넣으면 다른 재료에 비해 몇 시간은 족히 타는 장작불은 불 땔 때 여유가 있었다. 장작불은 금세 더운 입김 뿜어대며 솥단지에 음식을 데우고 아랫목을 덥혀주었다. 이맛돌을 지나 잘 데워진 구들장은 부모님 사랑처럼 따끈따끈하였다.

땔감을 뒤척이다 보면 부지깽이에 불이 붙기도 한다. 얼른 부뚜막 위 자싯물통에 담그면 찌직 진저리를 치며 연기와 함께 꺼졌다. 끝이 까맣게 탄 부지깽이는 바닥에 낙서도 하고 그림도 그렸다. 가마솥 두드리던 부지깽이 장단으로 부르던 노래는 굴뚝 연기를 타고 담장을 넘기도 했다.

군불 지핀 잔불을 부지깽이와 부삽으로 화로에 담아 화롯불로도 사용하였다. 수건에 싼 밥은 아랫목 이불속에 넣어 놓아 따뜻해도 식은 된장찌개는 화로에 삼발이를 놓고 데웠다. 추위에 몸을 움츠리고 밤늦게 들어온 자식은 식지 않은 사랑을 먹을 수 있었다.

몽당비 깔고 앉아 불을 땠었다. 닳아서 짧아진 빗자루라 앉기에 불편했지만, 바닥에 앉는 거보다 편했던 부엌은 군불 지피던 때에서 기름보일러로 바뀌었다. 땔감을 안 해도 되고 불 땔 일도 없이 스위치만 켜고 끄면 되었다.

오십 대에 중풍으로 쓰러지셨을 때 서울소재 병원서 한 달 동안 입원 해 있다가 내려오신 아버지는 눈만 끔뻑끔뻑하시며 누워계셨다. 병시중에 지친 어머니는 앓아누우셨고 시골집은 재래식 화장실이라서 신혼이던 우리 아파트로 오셨다. 침과 물리치료로 호전된 아버지를 위해 시골집은 부엌이 사라졌다. 부뚜막에 걸려있던 가마솥이 사라지고 나뭇간과 광 대신에 입식 부엌과 화장실 딸린 목욕탕을 급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부엌 한구석에 세워져 있던 부지깽이는 쓸모가 없어졌다. 편리해진 시설에 부지깽이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궁이에 불 지필 때 요긴하게 썼던 부지깽이는 늘 부엌 한 귀퉁이에 세워져 있었다. 몽당비로 부엌 바닥을 쓸고 나뭇간 옆에 부지깽이를 세워두었으니 신성하게 모신다는 일종의 의식이었지 싶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수많은 부지깽이가 쓰임새를 다하고 불쏘시개로 사라졌다. 불쏘시개 잘 타도록 다독이다가 자신도 불로 태워졌다. 아궁이에 불 때서 이 땅에 밥상을 차려냈던 어머니들 같다. 손에 물 마를 새 없이 희생이라 생각지 않고 마땅히 할 일이고 사명이라 생각했을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따라 갈 수 있을까.

불쏘시개에 따라 생명의 근원인 불을 살살 부풀리기도 하고 꾹꾹 눌러 다독이기도 한 부지깽이처럼, 나는 나를 다독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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