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오계자 보은예총 회장

입술은 튼 것처럼 갈라지고 콧등은 긁히고 흉터 때문에 검댕이가 되었다. 옷은 낡았지만 깨끗하다. 머리는 단정하게 빗어 묶었다. 한 쪽 귀는 반이 떨어져 나가고 없다. 이마는 뽀뽀의 흔적일까 반지르 하다. 그러나 표정은 참 행복해 보인다.

오래 전, 어느 종합병원 접수창구 앞 대기실에서였다. 서너 살 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낡은 인형을 형언할 수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쓰다듬고 있었다. 그 아이와 어머니의 차림새로는 경제적으로 윤택해 보였지만 많이 낡은 인형을 버리지 않고 "춥지?" 하면서 자신의 옷자락으로 발을 덮어주는 행동이 하도 애틋해서 물어 보았다.

"그렇게도 이뿌니?"

"내꺼"

"아주 많이 사랑하는구나."

"내꺼"

아직 말이 서툰 그 아이는 몇 가지 물어봐도 계속 내꺼 라는 대답뿐이다. 설명이 필요 없다. 내 것이니까 아끼고 내 것이니까 사랑한다.

그날 밤 잠자리에서 눈을 감자 그 아이의 진지한 표정이 영상으로 나타났다. 그 '내꺼'라는 한 단어 속에서 그 아이의 가슴에 담긴 절절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 전신에 뜨겁도록 진한 전율이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생명이 없는 낡은 인형도 내 것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진지하게 아끼고 보듬는데 내 것인 자신을 우리들은 과연 얼마만큼 아끼고 보듬고 있을까.

'내 인생은 나의 것' 이라는 어느 유행가 가사의 한 구절이 한 때 유행어가 되어 떠돌던 시기가 있었는데 아마 내가 사춘기 시절쯤이었을 게다. 나의 것이니 스스로 사랑하고 책임진다든지 내 힘으로 일어선다는 뜻으로 내 것을 주장했다면 참 좋은 현상이다. 허나 내 기억 속에는 그런 주장보다는 내 인생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상관 마라, 잔소리 말라는 의미로 내 뱉는 경우를 더 많이 보았다. 동 시기에 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될 대로 되라) 라는 팝송의 가사 한 구절도 유행 했으니까.

정신과나 심리 상담사가 내담자에게 직접적인 지시는 하지 않는다. 대화를 통해 그들의 생각을 도와주고, 자신의 문제점을 스스로 찾아내도록 유도해준다. 그것은 그 해결책도 자신이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스스로 해결하고 나면 재발의 우려가 줄어든다. 그만큼 자신감이 생기고 쉽게 말해서 氣가 살아난다. 하물며 건강한 줄 알고 있는 우리들이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지 못한다면 생각해 볼 문제다. 우선 나부터 자신을 속일 때가 많다. 내 경우는 자신을 지나치게 폄하 할 때가 많다. 아주 드물지만 고의적으로 자신을 과대평가 도마에 올려놓고 그 수준에 맞추려고 스스로 힘들게 학대했던 경우도 있었다.

오계자 수필가
오계자 수필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대상이 누구든 무엇이든 그 어린아이처럼 애틋하게 사랑해 본 적이 있었던가. 반성 해본다. 사랑을 받기만 원한다든가 요구만 하는, 그래서 배품에는 인색하지 않았던가. 배우자에게도 다른 가족에게도 나는 이만큼 베풀었는데 왜 그보다 못하게 주는가에 집착하지는 않았던가. 그 잘못된 생각은 불만을 쌓고 쌓인 불만은 원망과 미움을 낳는다. 가족도 내 가족인데, 이웃도 나의 이웃이며 친구도 내 친구다. 참 사랑에는 조건이 없다. 그 아이가 낡은 인형에게 무엇을 바란다거나 어떤 조건이 있을 리가 없다. 그냥 내 것이니까 아낀다. 그래서 더 절절했던가 싶다. 조금 때가 묻어도, 쓸모가 줄었다 해도 내 것은 내 것이라는 이치를 어린아이로부터 얻었다. 축제분위기에 들떠서 질서를 잃고 헤매다 목숨까지 잃은 젊은이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빈다. 하지만 비판과 남 탓만 하는 것은 다소 과한 것 같다. 또한 많은 젊은이들의 주검 앞에서 자신들의 이해타산에 악용하는 행위야말로 저주받을 일이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때일수록 각자 성찰하고 사랑으로 보듬는 마음이 절실하다. 내나라 내국민 내가 먼저 사랑으로 보듬으면 좋겠다. 새해부터는 성찰과 사랑을 좌우명으로 해야겠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