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태초에 우주가 만들어질 때의 이야기다. 인류의 출현보다 훨씬 먼저 이루어졌을 천지창조의 과정을 지켜본 이나 당시의 기록이 없으니 한 참 후에 만들어진 창조설화였을 것이다.

하늘이 넓고 거친 우주의 곳곳에 만물이 거할 곳을 정해줄 때 토끼는 달나라에 터를 잡았다. 토끼는 둥글고 밝은 달이 좋아 껑충껑충 뛰어와 보니 말라 죽어 고목이 된 계수나무 몇 그루 밖에 보이지 않는 너무도 황량한 곳이었다. 토끼가 몇 날 며칠을 먹이를 찾아다니다 배가 고파 허리가 구부러지니 달은 반쪽이 되었고, 털이 거무스름하도록 기어 다니다 힘이 빠져 쓰러지자 달은 둥근 흔적만 남았다. 이를 본 하늘은 좁더라도 어울려 살라고 토끼의 주거지를 인간 세상 지구로 옮겨 주었다. 그러자 달도 다시 살아나 밝고 둥근 황금빛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만물이 함께하면서도 모두가 주인인 지구에서 토끼는 먼저 온 이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찾는 이가 없는 깊은 산 속에 자리를 잡았다. 토끼는 그렇게 해서 산토끼(野兎)라는 이름으로 야생동물도보에 올랐다. 바로 조상토끼다.

계절 따라 털갈이로 옷을 바꿔 입고, 지천으로 널려있는 약초와 지기의 열매를 먹으며, 눈비와 더위와 추위를 견디고,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드나드는 굴에 비상탈출 굴을 하나 더 만들어(狡?三窟) 의식주가 해결되니 이보다 더 평화로운 곳은 없을 듯 했다. 산속에서 외롭게 살아도 그 때는 무척이나 행복했다.

토끼는 하늘로부터 내려 받은 은총을 혼자만 누리기가 죄송만만하여 이웃들에게 베풀기로 마음을 정하고 배려하는 삶을 펼쳐나갔다. 그 처음 일로 깊은 산속 옹달샘의 생명수 원천을 세수용으로 쓰지 말고 음용수로만 사용(윤석중 옹달샘)하기로 했다.

다음은 일 년이면 한 번에 여남은이나 되는 자녀를 대여섯 배씩 낳아 잘 길러 엄동설한도 걱정 없는 따뜻한 털가죽과 장수약초만 골라 먹어 만병통치의 효험을 주는 귀하디귀한 소생보신의 간장과 태산준령을 넘나들며 다듬은 쫄깃쫄깃한 건강미육을 제공해주니 이보다 더한 보시가 어디에 있겠는가!

마침내 산중호걸 호랑이의 해소천식증과 심해 용왕의 해묵은 숨 가쁨 신병을 토끼의 시뇨환약만으로도 쉽게 고칠 수 있었으니(龜?說話) 토끼가 만병의 치료에 특효임을 감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런 소문은 온갖 동물의 수명연장욕을 부추겨 산토끼가 멸종 지경에 이르자 모든 게 토끼의 천적이 되었다.

지혜롭고 영민한 토끼는 천적으로부터의 안전생존전략으로 그들의 지혜와 주력을 능가하는 방안을 마련해야했으니 그것은 신변보호를 위해 이웃의 눈에 잘 띄지 않도록 철따라 옷 색깔을 주변 환경에 맞추는 것과 산의 경사면을 잘 뛰어오르도록 뒷다리를 길고 튼튼하게 하여 울창한 숲속을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안 되어 먼 산꼭대기의 소나무를 기어오르는 개미까지도 소상하게 볼 수 있는 혜안과 보이지 않는 바다의 파도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몸뚱이만한 큰 귀에 수십 년 묵은 산삼의 몸속에 모아둔 약물 맛도 알 수 있는 벌름 더듬이 코의 후각까지 갖추니 맨손이라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따돌릴 수가 있었다.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2023년이 바로 60년 만에 찾아온 영민하고 민첩하다는 검은 토끼의 해 계묘년(癸卯年)이다. 토끼는 하늘이 쥐어준 토끼풀(Clover)을 즐겨 먹는데, 그 잎은 석장(Happy)이거나 넉장(Lucky)이라서 매일 행복과 행운의 꿈을 먹고 키우며 살아가니 늘 안정적이고 평화로우며, 자유를 만끽하며 상생을 즐기고, 인연 맺은 사람에겐 희망을 이루는 길 열어주며 착하게 살도록 소망도 심어준다.

계묘년을 맞아 천적인 인간에게 바라는 토끼의 생각은 "국운융성이 꼭 올 것이니 사람이라면 제발 사람답게 좀 사시고, 철들었으면 부디 싸우지 좀 마시고, 존중과 배려로 서로 사랑하세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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