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이년전 나는 오후 늦게 더위도 식힐겸 안식구와 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우리고장의 명승지인 의림지를 찾았다. 매번 와 볼수록 어머님 품속과 같은 정겨움이 서려있는 곳이다. 오래된 소나무에서 말없는 삶의 철학을 배우기도 한다. 물에 떠있는 오리 배를 보면서 바쁜 삶에서 모처럼 여유로움을 맛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용추폭포에서 절벽을 향하여 하얀 물기둥을 세우며 떨어지는 물방울이며 어디 그뿐이랴 그 아래에서는 물기둥이 빚어낸 수정같은 물연기를 보면서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는 가족과 사랑하는 연인들의 모습, 볼수록 행복스런 모습이다.

더욱 감사한 것은 때마침 제천문인협회에서 여름휴가철을 맞아 유서 깊은 이곳을 찾는 분들에게 그윽한 시의 향기를 맛보여드리기 위해 2021년 8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40여분의 회원들이 100여편의 주옥같은 작품으로 제천사랑 숲길 제천시화전을 마련하고 있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전에는 일정한 장소에서 시화전을 개최한다고 하여 독자들을 오게 하였으나 이제는 독자 곁으로 다가가 이처럼 작가의 고결한 숨결을 같이 할 수 있으니 말이외다. 나와 안식구도 시 한편, 한편을 마음속으로 읽고 또 읽고 음미해 본다. 작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음성을 들으려고 하니 시간이 부족하기만 하다. 실상 작가의 내심을 모두 알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참으로 작가의 고뇌가 서려있는 한작품 한작품 마다 경이함을 금할 수 없다. 어쩌면 이렇게 같은 사물을 보고도 다른 관점에서 예쁘게, 정겹게, 맛과 멋이 서려있는 감성어린 눈으로 표현을 하다니 정말 언어의 마술사다. 좀처럼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는다. 더위도 잊은 채 말이다.

그런데 또 다른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다름아니라 초등학교 3학년 쯤 되는 여학생이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시를 감상하는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무언가 이 학생이 엄마에게 시를 가르키며 묻는 가보다. 엄마는 시를 다시 음미하시는 모습이다. 그 얼마후 엄마는 시 작품에 대한 전체 내용과 시어쓰임에 대하여 자녀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것 같다. 그러자 그 학생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 끄덕한다. 그리고는 또 다른 시 작품으로 다가선다. 부모님께 참 이 자리에 잘 오셨다고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보는 만큼 시야가 넓어진다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모르긴 해도 그 학생도 이런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나도 한번 시를 잘 써봐야 되겠다고 말이다. 관심이 있으니까 엄마에게 여쭈어 보는 것이다. 그냥 눈으로 보고 스쳐 갈 수 도 있었으리라. 그런데 그 학생은 엄마한테 모르면 여쭈고 또 여줍는 것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학생이 대견스러워 보였다. 나도 모르게 그 학생을 위해 마음속으로 저 학생도 유명한 시인작가가 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해 본다. 이처럼 가족들이 함께 시화전을 감상한다는 것은 이 세상 어느 것보다 여유가 있고 행복스러워 보였다. 보는 이도 함께 행복해 진다. 이것이 행복의 바이러스인가 보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어느새 땅거미가 드리우고 곳곳에 예쁜 전등 빛이 비치고 수줍은 달님도 우리를 맞아 그림자까지 만들어 주니 이것 또한 자연을 벗삼아 시를 감상하기에는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아쉬움을 남긴 채 발걸음을 되돌려 본다. 안식구도 모처럼 즐거웠다고 엷은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왠지 행복한 가족들의 시화전 감상모습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각 작품마다 서려있는 시의 그윽한 향기를 통하여 작가와 독자의 무언의 속삭임을 할 수 있도록 만남의 장소를 마련해 준 제천문인협회 회원님들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 기억하리라 간직하리라, 숲길 시화전의 행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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