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아파트에 살다 주택으로 이사 온지 20년이 되었다.

오래 전 주택에만 살았기에 아파트에 꼭 한 번 살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아파트에서 잠을 잘 때 잠이 잘 오지 않을 정도였다. 베란다도 커 작은 화분도 조르르 줄 맞춰 놓았다. 한 쪽에는 작은 탁자와 의자도 놓아 커피를 마시곤 했다.

노을을 보면서, 또 달을 보면서 마시는 커피는 참 좋았다. 늦잠을 자는 휴일이면 거실 한쪽까지 들어오는 햇살이 얼마나 포근하고 따사로운지…. 아파트 생활은 색다르고 편리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답답하고 흙냄새 폴폴 나는 마당이 그리워졌다. 아파트에서 아파트로 몇 번의 이사를 가면서 꼭 주택으로 이사를 가야겠단 생각이 더 들었다.

그러던 어느 해 지금 살고 있는 주택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 아파트로 간다는데 우리가 이사를 하니 제일 젊은 부부였다.

우리는 이사를 오자마자 장날에 가서 감나무 묘목과 덩굴장미 묘목을 사왔다. 마당 뒤쪽으로 감나무를, 울타리 쪽으로 덩굴장미를 심었다.

감나무는 3년이 지난 후부터 감이 달리기 시작했다. 덩굴장미는 어찌나 빨리 자라는지 울타리를 타고 올라갔다. 하얀 나무 담장에 빨간 덩굴장미는 정말 운치 있었다.

나는 덩굴장미를 낚싯줄로 묶어 하트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골목 아이들을 한 명씩 하트 덩굴장미 안에 서게 하고 사진을 찍어 주었다. 사진관처럼 정말 근사하게 사진이 나왔다.

오후에는 울타리 아래에다 돗자리를 깔고 커피를 마셨다. 우리는 옆집 아주머니를 초대해 커피를 마시곤 했다. 아이들은 마당에 펼쳐놓은 파라솔 아래에서 놀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나를 처음 본 사람은 좀 있어(?) 보이는 음식을 먹는 줄 안다. 옷도 비싼 것으로 입는 줄 안다. 하지만 잘 아는 사람은 내가 보리밥에 시래깃국을 좋아하고 저렴한 옷을 입는 걸 안다.

이런 내가 편했던지 우리는 옆집에 자주 밥 초대를 받았다. 아주머니가 보리밥에 된장국을 했다며 자주 초대를 했다. 비 오는 날 부침개를 접시에 담아 담을 넘어 오기도 했다.

텃밭에 호박과 가지를 땄다고 대문에 걸어 놓기도 했다.

윗집에서는 예전에 닭을 길렀다. 나도 주택에 살면 닭을 키우고 싶었다. 꼭 내 손으로 닭이 난 달걀을 꺼내보고 싶었다. 그래서 윗집에 가게 되면 닭장을 구경하곤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아저씨가 읽었는지 달걀을 한 움큼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닭장 청소를 했는지 닭들이 우리집과 골목길 옆집 등으로 탈출을 했다. 닭이 얼마나 크고 힘이 센지 우리는 닭을 발견하고도 잡기는커녕 도망을 쳤다.

봄이면 골목길에 수수꽃다리가 향기를 뿜어 주었다. 여름이면 우리집 옆집 마당에는 고추, 상추가 싱싱했다. 담장 위 노란 호박꽃이 별처럼 피고 얼마 후 연둣빛 호박들이 달렸다. 옆집 아주머니는 그 호박을 넣어 손국수를 만들어 주었다.

여름밤이면 옆집 옥상 들마루에 들러 앉아 삶은 옥수수를 먹기도 하고 찐 감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옆집에서는 침이 꼴깍 넘어가는 포도가 달렸다. 포도 주인은 골목사람들 모두다.

가을이 되면 우리 집 감나무에서는 감이 탐스럽게 달렸다. 우리 감 역시 주인은 골목에 사는 사람들이다.

가끔씩 보면 대문 손잡이나 대문 아래에 무엇인가 놓여있다. 떡이며 과일, 채소 등 종류도 다양하다. 예전에는 재활용을 모으는 유모차 할머니가 비닐봉지에 먹거리를 담아 대문 손잡이에 걸어 놓곤 했다. 지금도 가끔 퇴임한 정 선생님이 들어온 과자나 채소 등을 나눠 먹자고 대문 앞에 놓고 가시곤 한다. 그 선생님 역시 주택에 살다 보니 더 그런 정이 더 한 것 같다.

지난 가을에는 윗집 어르신이 사과를 많이 가져다주었다. 살짝 상처가 난 사과를 주기도 하는데 정말 맛있다.

이런 내 마음을 잘 읽은 건지, 가끔씩 몇 알이라도 슬쩍 전해주고 간다. 우리는 그런 날엔 콸콸 흐르는 물에 뽀득뽀득 사과를 씻어 껍질 채 와작와작 깨물어 먹는다.

주택에 사니 급한 일이 있으면 서로 돕고 살아 참 좋다. 눈빛만 봐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안다. 주택에 살다 보니 나누는 삶이 얼마나 즐거운지 알게 된다. 배려하는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올해에는 골목에 사는 토끼처럼 부지런한 이웃들이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한다.

올해 난 이웃에게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행복한 생각에 벌써부터 설렘과 기쁨 가득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