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여행은 새로운 곳을 찾아가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코로나 여파로 하늘 길이 막혀 답답하고 좀이 쑤신다. 일상을 떠나 바람을 쐬며 가슴 벅차고 설레이는 재충전이 필요하다. 미국과 캐나다로 이어진 4,500Km의 눈 덮인 로키산맥의 웅장함에 감탄하던 그 해 겨울 속에 잠시 들어가 본다. 남편은 출장으로, 연수로, 이런 저런 연유로, 여행을 통해 시간을 공유하고 함께 추억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직원들과의 여행조차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며 부부동반을 적극 추진할 정도다. 과학하는 사람들이 모인 남편의 직장 동료 부부들과 여행 동반자가 된지 꽤 오래 되었다,

여행이 주는 느긋한 휴식은 삶의 속도를 늦추는 낭비가 아니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느끼며 그것으로 인해 새로운 기쁨을 누리는 시간이다. 바닷가를 걸으며 파도에 반하고, 숲속 길을 산책하며 숲 향기에 빠져 밀려오는 행복감을 만끽한다.

'오악(五嶽)을 보고나면 다른 산은 보이지 않고, 황산(黃山)을 보고나면 오악은 보이지 않는다.'는 황산 여행을 기점으로 이 멤버 리멤버 포에버 (이 member remember forever)가 만들어졌다. 그 안에는 가는 곳마다 기이한 풍광과 순간 포착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멋진 노신사분이 있다. 카메라맨인 그의 렌즈에 익숙한 탓인지 짝지는 어디서든 자연스런 몸짓과 표정으로 늘 그의 모델이 된다, 바로 그 장소에서 그대로 따라 하면 하나의 그림이 되는 추억 한 컷이 저장된다. 긴 여정을 풀고난 후 뒤풀이 모임에 가면 순간의 추억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여행앨범을 선물로 받을 수 있으니 기쁨이 두배다.

행복한 여행자가 되는 그 시간은 눈부신 오늘을 사는 것이다. 기획력이 뛰어나고 다재다능한 아내를 그림자처럼 지키는 목사님 부부도 이 멤버다. 다시 태어나도 서로를 택할 것이라는 사랑꾼들이다. 덕분에 낯선 땅 어느 곳에서든 주일이면 현지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무엇이든 하고자 하면 바로 해결 해 주는 척척 박사 아내와 알콩달콩 살고 있는 행복한 사역자임이 분명하다.

여행은 곳곳에 숨어있는 비밀스런 보물을 캐듯, 목적보다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숨을 쉬면 그 숨결조차 얼어버려 체감 온도가 50도까지 느껴지는 엘로나이프에서 있었던 일이다. 숨결이 얼어 하얀 머리칼에 썬글라스를 쓴 모습은 마치 러시아 여배우 나타샤를 보는 듯했다. 무슨 일이든 야무지게 해 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똑소리 나는 그녀 또한 이 멤버다. 아들과 함께한 여행 중 하필이면 엄마 몸 상태가 좋지않아 이국 땅 낯선 병원에 들러 진료를 받을 정도로 고생을 했다. 곁에서 엄마를 간호하느라 고생한 효자 청년의 듬직한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요하국립공원 전망대에서, 호수가 바라보이는 벤취에서, 다정한 엄마와 아들은 그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워 보였다. 이 또한 리멤버 앨범 속에 인생 컷으로 들어있다.

이경영 수필가
이경영 수필가

여행의 추억은 그리움이 되어 또 다른 낯선 곳으로?떠나는 꿈을 꾸게 한다. 벤프에서 고기가 가장 맛있다고 소문난 곳에서 이민 간 선배가 대접 해 준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두런두런 그동안 살아 온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일행 중 한 분이 여권이 들어있는 크로스 백을 식당 의자에 놓고 깜박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 모두는 얼음이 되었다. 제발 꼭 찾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방법외 도리가 없었다. 찾아 간 그 곳에서는 놀랍게도 본인 확인 후 여권을 만날 수 있었다. 살아있는 도덕교과서를 보듯 정직한 국민성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보통의 삶으로부터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한 사건이었다. 지옥과 천국을 경험한 잊지 못할 에피소드다. 낯선 곳에서 가슴을 쓸어내린 황당한 경험을 통해, 풀 한포기 돌 하나가 새롭게 보이는 순간을 만끽히였다.

여행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나를 붙들어 매기도 하고 풀기도 하는 인생 끈이다. 오늘도 나는 40년 인생 짝궁과 함께 새로운 시작이 되는 또 다른 곳으로의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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