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처마 끝 풍경에 시선이 머문다. 녹은 눈은 매서운 한파에 고드름 되어 매달려 있다. 고드름을 꺾어 우둑우둑 씹어 삼키던 수정 같은 동심이 마음을 헤집는다.

고드름의 시린 감촉이 손끝에 느껴진다. 투명해서 속 다 드러내 보이며 매달린 고드름은 기다랗고 뾰족한 원뿔형이다. 언제 녹아서 떨어질까 위태롭기는 하지만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바람 타고 눈이 분분히 내린다. 온 천지가 눈꽃 세상이다. 옹골진 삶을 소복소복 덮어준다. 눈이 와서 망설였는데 막상 산행하니 기분이 좋다.

상당산성을 도는데 눈 쌓인 곳에서 일행이 나보고 누워보란다. 눈밭에 누워서 하늘 본 적이 언제였던가.

남문 앞 언덕에는 눈썰매 타는 아이들로 북적인다. 플라스틱 썰매를 가져오기도 하고 비료 포대, 종이상자에 앉아 신나게 논다. 나도 눈만 오면 비료 포대 하나 들고 언덕 위에 올라가 썰매 타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릴 적 고향 방죽은 겨울이면 얼었다. 깊었지만 꽁꽁 언 얼음판이어서 썰매 타고 팽이 돌리며 놀기에는 제격이었다. 점심도 거른 채 꽁꽁 언 손 호호 불어가며 놀던 때. 찬바람에 코가 질질 흐르면 소맷부리로 쑥 한번 닦고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다시 놀이에 집중하였다.

장갑이나 어디 있었던가. 맨손으로 놀다 보면 얼은 손을 엄마가 이불 깔린 아랫목에 넣어주었다. 세상 부러운 것 없이 따듯했었다. 손이 다 부르터서 갈라지고 피 나면 소죽 쑨 따뜻한 물에 담갔다가 손을 빡빡 문질러 씻겨주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주로 공회당 앞에서 놀았다. 마당에 놀이판을 그려놓고 1~8까지 써 놓는다. 돌을 던진 후, 돌이 놓인 번호를 밟지 않고 한 바퀴를 돈다. 번호에 맞게 몸을 움직이느라 이리저리 뛰며 그림의 첫 칸부터 마지막 칸까지 다녀오는 놀이가 사방치기다.

팽이 돌리기, 비석 치기, 연날리기, 말뚝 박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공기놀이, 실뜨기, 그네타기, 널뛰기, 땅따먹기, 고무줄놀이, 말타기, 제기차기, 숨바꼭질……. 동네 골목 곳곳에서 때론 산 위에서, 너른 들판에서 뛰고 달리며 놀았던 어린 시절. 다양한 놀이로 키가 자라고 뼈가 굵어져 갔다.

구슬과 딱지가 재산이었던 때, 그 시절에는 구슬치기나 딱지치기해서 좀 따면 부자라도 된 양 흐뭇했었는데, 열심히 모았다가 다음 해에 또 갖고 놀기도 하였다.

판판한 돌을 땅에 비석처럼 세워두고 그것을 맞추는 비석 치기. 발등에 망(돌)을 올려 상대편 비석을 쓰러뜨린다.

"와! 맞췄다." 이번엔 무릎 위에 올려서 해볼까? 어깨로 해볼까? 넘어져 가는 돌멩이를 보며 분통함을, 멀리 날아가는 돌멩이를 보며 통쾌하였다. 비석 치기는 순서에 대해 알게 되고 정교하게 맞추려면 얼마만큼의 거리와 각도가 필요한지 스스로 터득해 나가기도 한다.

놀다가 지치면 마당에 퍼질러 앉았다. 톡톡 탁탁 공깃돌로 놀이한다. 그때는 길 가다가 공기놀이하기에 딱 맞는 돌이 나타나면 얼른 주워 주머니에 넣곤 했다. 돌을 하늘 높이 올려 하나, 둘 집기도 하고, 다섯 알 손등에 올려놓는데 떼구루루 떨어지는 공깃돌. 개수에 따라 점수를 내는 거라서 최대한 손등 위에 남은 돌을 꼼질꼼질 움직여 모아본다. 공깃돌 올려 받은 손안에 몇 개 있을까. 모두가 조바심 내며 바라보았었다.

공기놀이는 손재주와 운동신경 등에 도움이 되는 건 물론 심지어 조심성과 침착성도 길러준다고 하니 지금 해도 좋을 것 같다. 해 질 녘 '밥 먹어라' 부르던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새삼 그립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같이 놀던 동무들 삶의 터전이 달라 이리저리 흩어졌지만, 명절이면 특히나 겨울에 있는 설날이면 더 그리운 친구들. 그리움의 저 끝에는 아련한 향수를 불러온다. 설날이 돌아오니 썰매 타고 연을 날리기도 했던 겨울날의 추억이 아스라하다. 동네가 떠나가도록 시끌벅적 놀며 웃던 그해 그 겨울처럼 크게 소리 내어 웃고 싶다.

이제 처마 끝 고드름이 녹을 테다. 어릴 적 겨울은 추억이 되고 시나브로 봄은 오고 있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