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 ㈜대원 전무이사·수필가

신문을 펼치니 푸른 양 날개를 우아하게 펼치는가 싶더니 푸드덕 날아오른다. 이어 방어할 틈도 없이 내 가슴으로 파고든다. 신년 초라 좌중자애自重自愛를 읊조리며 행동을 조심하기로 다짐한 터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몸의 증상은 심해지고 갈증이 날 정도이니 어쩌랴. 몸 안에서 날갯짓을 무시로 해대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날개의 촉수들이 피부를 뚫고 나올 태세이다. 온몸에 열꽃이 돋는다. 내 안에 잠자던 별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몸 안에 열을 식혀야만 희끄무레한 별이 확연히 보이리라. 뇌리에 일어나는 의문을 풀지 않으면, 별다운 별을 볼 수가 없다. 그러려면 가슴이 원하는 길을 떠날 수밖에 없다. 내 안에 들어온 길조를 보러 가고자 구실을 만든다. 나는 지금 일에 파묻혀 지내는 아들을 만나러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오른 것이다. 먼길을 나서는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스치랴. 내 가슴에 깃든 신령스러운 주작을 마주할 참이다.

나는 사학자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옛것에 관심과 애정이 많다. 오래된 문화유산 앞에 서면, 알고 싶어 안달이 나는 성향이다. 고구려 후기 조성된 강서대묘와 강서중묘의 사신도의 생기 넘치는 화려한 주작과 현무를 신문에서 보고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벽화 속 신령의 동물과 돌 위에 어떻게 그렸는지 궁금하였다. 신문에서 문활람 작가의 세계를 스크랩하고 호시탐탐 오늘을 기다린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는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벽화이다. 문헌에도 없는 고구려 시대를 어찌 상상할 수 있으랴. 작가는 "고구려 고분벽화 무덤이 내포하는 영원성과 우주적 본질을 담은 광물의 속성을 탐구하여" 벽화의 의문점을 푼 것이다. 벽화의 가장 독특한 점은 "화강암 위에 직접 색을 칠해 그렸다는 점"이란다. 천연 안료의 색칠이 벽화를 오래도록 유지하여 그 시대 선인들이 입었던 의상과 생활상, 예술 행위를 알게 된 것이다. 작가는 화강암을 잘게 부순 돌가루를 활용하여 바탕재 뿐만 아니라 채색하는 안료도 개발한다. 거대한 고분벽화를 물렁하게 만들어 갤러리에 보란 듯 전시한 것이다.

그녀는 돌의 스토리를 깬 작가이다. 사유가 깊은 사학자이다. 돌아보니 모진 풍파와 세월에 허물어지지 않은 유물은 석탑과 석물이 여럿이다. 그 석물의 재료도 대부분 화강암, 고구려 시대부터 지금까지 사용한 돌이다. 투박한 재질의 돌에 한국인의 정체성이 스며 있다고 생각하니 온몸의 신경을 자극한다. 재료도 풍부하지 않은 시대에 소중한 문화유산인 벽화를 남긴 선인이 존경스럽다. 선인의 뇌리에는 매일 정으로 돌을 쪼며, 벽화를 그리며 수많은 별이 반짝거렸으리라.

봉황은 상상의 동물이다. 강서중묘의 벽화 주작은 신령스러운 봉황의 형상이자 사신의 하나로 남쪽을 관장하는 신령이다. 벽화를 재현한 주작은 검붉은 두 다리를 세우고 다섯 개의 검은 발톱으로 땅을 힘주어 움켜잡은 듯하다. 붉은 구슬을 입에 물고, 옥색 빛깔의 양 날개는 비상하려는 듯하고, 날렵한 꼬리는 바람결에 휘날리는 듯 깃털에 힘이 서려 있다. 그래선가. 나에게 기운차게 날아든 듯한 착각을 일으킨듯하다. 무료한 일상을 일순간에 벗어나게 한 신령한 기운이다. 벽에 걸린 액자는 벽화를 얇게 저며 옮겨 놓은 듯 보인다. 화강암의 무게가 있으니 돌가루로 재현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라고 누가 말했던가. 역시 빛나는 작품은 시대에 맞게 재창조되는 것. 여기엔 작가의 무궁한 탐구와 열정이 스며야 하리라.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내 안에 별이 있다. 그 별은 주인이 이끌어야만 빛을 발한다. 자기 재능과 재주가 아무리 능해도 발현하지 않으면 숨죽은 별일 뿐. 끊임없는 물상 탐구와 사유의 깊이에 따라 혜안이 열리고, 거기에 순수한 작가 정신이 깃들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찬란한 별빛을 보리라. 갤러리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슴에 깃든 주작이 떠나며 남긴 선물인가. 노을 진 붉은 천하에 별이 영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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