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우리 집 주방 바닥에는 고무매트가 깔려 있다. 어느 날 매트 주변의 나무 데코타일이 거무스름하게 변한 것이 눈에 띄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일시적이고 별일 아닐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한동안 지켜보았지만 안타깝게도 거무스름해지는 범위는 넓어져만 갔다. 주방 바닥에 깔아 놓은 매트 밑에 습기가 차서 곰팡이 균이 서식하게 된 것은 아닌가 싶어 매트를 치웠다. 매트 밑에 있던 나무 데코타일이 눈에 확연하게 띌 만큼 시커멓게 변색된 것을 본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주방 바닥의 나무 데코타일이 시간이 지날수록 거무스름해지는 범위가 급속하게 넓어져 가는데도 수수방관만 하다가 부지불식간에 거실 전체로 번질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어 부리나케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일단 다급한 마음이 들어 곰팡이 균을 없애기 위해 세제를 뿌려 닦아 보았지만 효과가 미미했다. 처음에는 주방 바닥의 나무 데코타일이 거무스름하게 변색되는 원인이 누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서울에 살고 있는 아들이 집에 왔을 때 "나무 데코타일이 거무스름하게 변색되는 원인이 누수일 수도 있겠는데요."라고 했던 말조차 귀담아 듣지 않고 무시했다.

이종완 위로&소통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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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하고 주방 개수대 밑바닥을 유심히 살펴보니 물이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누수가 어디에서 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급선무였다. 주방에 설치된 정수기와 수도 배관을 연결한 호스에서 물이 흘러나올 수도 있겠다 싶어 정수기 사용을 잠시 멈춰보았지만 허사였다. 개수대에서의 누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주방의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사용할 때마다 개수대 밑 벽면을 타고 물이 흘러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방 바닥의 나무 데코타일이 거무스름하게 변색되는 원인이 누수 때문인데도 개수대 밑바닥을 세심하고 꼼꼼하게 살피지 못한 탓에 사태를 키웠다.

주방의 수도 배관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 후 아파트관리사무소 직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주방의 수도꼭지를 틀어 물이 나오게 한 후 누수가 되는 위치를 직원에게 알려주었다. 직원 분은 곧바로 수도배관에 연결된 수도꼭지 호스를 뽑아 주의 깊게 살펴본 후 나에게 수도배관에 연결된 수도꼭지 호스 상단 부분이 찢어져 누수가 발생했다며 물이 흘러나오는 장면을 확인시켜 주었다. 초기에는 수도꼭지 호스가 미세하게 찢어져 병아리 오줌처럼 소량의 물이 흘러나오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찢어진 부분이 넓어져 누수량이 급격히 많아졌을 것이라고 진단해 주었다. 역시 전문가의 누수 문제에 대한 진단은 명확했고 그 해결책도 명료했다.

누구나 크고 작은 문제를 겪으며 살아간다. 어떤 문제이든 그 문제를 해결하게 위해서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것이 선결 조건이다. 주방 바닥이 거무스름하게 변색되는 현상이 나타났던 초기와 주방 바닥에 깔아 놓은 매트를 치울 때만이라도 원인을 규명하는데 진력했어야 하는데 소홀히 하고 간과했다. 처음부터 누수를 고려하지 않고 주방 바닥에 깔아 놓은 매트 때문에 곰팡이 균이 서식하게 되었다고 믿고 싶었던 것은 누수가 원인이면 번거롭고 성가신 일을 겪어야하기 때문에 아예 누수에 따른 공사를 회피하고 싶었던 무의식적인 심리가 작동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 나의 유년기에 번거롭고 성가신 일을 겪는 것을 싫어하고 회피하는 심리가 형성되었던 것은 아닌지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무의식은 극히 소량으로 누수 되는 물과 같다. 미세하게 흘러내리는 물이 바닥을 시나브로 흥건하게 적시듯 양육자의 훈육으로 형성된 심리적인 기질은 자녀의 무의식에 차곡차곡 쌓인다. 아주 적은 양의 물이 거실 바닥을 곰팡이 균으로 오염시켜 썩게 하듯 양육과정에서 부정적인 심리요인으로 영향을 끼쳤던 무의식은 개인의 삶에 역기능적인 영향을 끼치며 부침을 겪게 한다. 요즘 나는 고열의 스팀을 활용하여 곰팡이 균을 제거하기 위해 주방 바닥에 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그 위에 휴지를 얇게 깔고 물을 뿌린 뒤 다리미질을 하는 부침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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