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허공에서 한바탕 몸부림치다 땅에 내리꽂히는 윷가락에서 짜릿한 쾌감을 맛본다. 흔들대다가 제풀에 멈출 때까지 숨을 죽인다.

"윷이야" "모야" 윷가락이 모두 젖혀지거나 엎어지기를 바라며 들여다본다.

정월 대보름날을 맞이하여 윷판을 벌였다. 금천동 주민자치 위원회가 주최하고 직능단체와 행정복지센터에서 주관한 한마당 축제다. 윷놀이는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 윷이라는 놀이도구를 사용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며 노는 놀이다. 네 개의 윷가락을 하늘 쪽에 던진 후 땅에 떨어진 쾌에 따라 승패를 좌우한다.

엎어지고 뒤집히는 음양의 철학이 있고 네 개의 윷가락은 사계절을 상징한단다. 각이 진 쪽은 땅을 의미하고 불룩한 뒤쪽은 하늘을 의미한다고 하니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모 한 사리 나와라, 윷이냐" 여기저기서 터지는 함성. 세군데서 펼쳐진 예선전은 윷가락 던질 때마다 아쉬움과 환호성이 혼재한다.

윷가락을 던지느냐 굴리느냐에 따라서도 모가 나올 확률이 달라진다. 굴리게 되면 평평한 부분이 땅에 닿을 때마다 충격을 받아 제동이 걸리기 때문에 던질 때보다 모날 확률이 4배 이상 높아진다. 올해는 네 명이 윷가락을 하나씩 던지다보니 그럴 일은 없다. 혼자서 던지는 거보다 화합이 더 중요하다.

한사리 나는 상대 팀에 비해 우리 팀은 던졌다 하면 개나 도다. 그러니 말판에 나가면 바로 잡힌다. 전략을 잘 세우려고 업어서 가도 잡힌다. 윷가락이 다 젖혀지면 윷, 엎어져 있으면 모. 윷이나 모가 나오면 '한사리' 했다며 좋아한다. 말이 많이 가기도 하지만 한 번 더 던질 수가 있다.

하지만 세상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듯이 윷 또한 그러하다. 윷을 잘 던졌다고 이기는 것은 아니다. 한사리가 많이 나왔어도 백도 한 번에 승리를 코앞에 두고 잡아먹힐 수도 있다.

도가 나오고 드디어 원하던 백도가 나왔다. 자 이제 한 번만 더 백도가 나오면 우리 팀도 한 말 나게 된다. 기대감에 들떠있는데 한 바퀴를 돌고 온 상대팀에게 잡히었다.

상대 팀은 넉동 가니 말이 출발하여 승리의 고지가 눈앞이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말판 안에서는 서로 잡아먹기도 하고 업어서 두 동 석 동이 한 번에 움직이기도 하니 고도의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3년 전에 주민자치 팀은 다 이겨 놓고서 '상대편과 말 바꾸기'가 나오면서 졌다. 재미를 더하기 위해 말판에는 '퐁당 밖으로 나가유' '경품' 등을 넣었다. '벌주'가 나오면 막걸리 한잔은 필수다.

후배가 구순이 넘은 시아버님과 윷놀이하였다. 치매 걸리실까 염려되어 둘이 하였다는데 '도'가 나오면 자꾸만 '돼지' 나왔다고 하신단다. "돼지가 아니라 도여요." 해도 돼지라고 해서 보니 도가 동물로 치면 돼지였단다.

도 개 걸 윷 모 다섯 가지의 동물로 표현되는 윷놀이. 도는 돼지, 개는 말 그대로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이다. 윷판은 밭田의 네 공간을 나타내는데 밭에서 돼지, 소, 말, 개 등의 가축들이 서로 경쟁을 벌이는 것이라고 한다.

윷말은 한 편에서 네 개를 부리며 이들 중에서 마지막 말이 결승점을 먼저 통과하면 승부가 결정된다. 때문에 세 동무니의 말이 결승점을 아무리 빨리 통과해도 승리와는 관계가 없게 된다.

말을 쓰다 보면 윷놀이 한 판에 우리네 인생이 담겨있는 듯하다. 11개 말판으로 오는 짧은 길도 있지만 20개 말판으로 돌아오는 길도 있다. 백도 한판에 승부 걸다가 한 걸음도 못 가는 경우도 있다.

예선전에서 졌으면서도 유쾌한 윷놀이. 이기면 어떻고 지면 어떠한가. 윷놀이로 한마음 되어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더 값진 화목한 시간이 되었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우리 팀이 잘 나오는 '도'나 '개'가 때로는 말(馬)을 지름길로 인도할 때가 있다. 기다리고 환호하는 '윷'이나 '모' 때문에 오히려 먼 길을 돌아가야 할 때도 있다. 도나 개가 많이 나오는 인생길이면 어떤가. 한 걸음 두 걸음 차근차근 가다 보면 인생 윷판에서 한사리도 나오고 재미있는 삶이 펼쳐지지 않을까. 그 기대감으로 나는 오늘도 허공에서 춤을 춘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