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며칠 전 날씨가 참 좋았다. 꼭 봄이 곁에 온 것 같았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 볼일이 있어 걸어가기로 했다. 신발도 가벼운 하얀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지현 삼거리를 지나 문구점 앞을 지날 때였다. 나도 모르게 눈길이 멈췄다.

요즘에는 대형 문구점이 생겨 갈 일이 별로 없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적만 해도 참 많이 갔었다. 빼꼼 문구점 안을 바라보니 주인아저씨도 그대로다. 아마도 이 문구점은 20년은 넘은 듯하다. 어쩌면 더 오래 됐을지도 모른다.

예전부터 주인아저씨는 부지런 하고 깔끔했다. 일요일이나 방학에도 늘 일찍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구점 앞은 청소가 잘 되어 있었다. 물건도 늘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신기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물건 찾기다. 문구점은 입구부터 돼지 저금통이 줄줄이 매달려 있다. 또 안에는 책받침과 공책, 과자 등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주인아저씨는 신기하게도 우리가 찾는 물건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척척 찾아 준다. 어린 마음에도 그게 참 신기했다.

볼일을 보고 다시 문구점 앞으로 걸어왔다. 반짝! 하고 생각난 것이 있어 문구점으로 들어갔다. 주인아저씨께 인사를 하니 잊지 않고 반가워했다.

역시 문구점은 예전처럼 별별 것이 다 있었다. 내가 어릴 적에도 먹었던 쫀드기와 아폴로 같은 과자도 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뽑기도 있었다. 내가 어릴 때는 풍선 뽑기도 있었다. 오이처럼 아주 긴 풍선이 서너 개 달려 있고 나머지는 작고 동그란 풍선이었다. 풍선 아래는 1원짜리 크기의 동그라미 뒷면에 숫자가 써져 있었다. 

지금은 풍선 대신 다른 뽑기가 있다. 그래도 꽝이 나오면 작은 과자나 캐릭터 팔찌 같은 것을 주는 듯싶다. 또 동전을 넣고 플라스틱 속 작은 피규어를 뽑는 기계도 있다. 어떨 때 보면 문구점 입구에 줄줄이 놓은 오락기에 딱 붙은 아이들의 모습이 진지해 보였다. 아기벌들처럼 딱 붙은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새로운 문구류도 많았다. 물고기 모양 필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정말 갓 잡아 올려 물이 뚝뚝 떨어질 듯했다. 살아있는 물고기 옆에 놓아도 모를 정도로 감쪽같았다. 

칼이나 가위는 더 안전하고 예쁘게 모습을 바꾸었다. 하지만 빙그레 웃는 붉은 돼지 저금통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모습이다. 그래서 더 와락 반가움이 들었다.

구경을 한참 한 후 일단 쫀드기와 아폴로, 별사탕이 들어있는 뽀빠이 등 이것저것을 샀다. 아주 맛있을 것 같고 재미있을 것 같아 침이 꼴깍 넘어갔다.

그리고 편지지와 편지봉투도 샀다. 잊었던 편지를 써보고 싶었다. 대부분 이메일이나 문자로 소식을 전했는데 왠지 이번 기회에 손으로 직접 써 보고 싶었다. 별사탕을 달그락 거리며 봄에 쓰는 손편지는 새로울 것 같았다. 아마도 편지 내용도 또 편지를 받을 사람도 별사탕처럼 달콤달콤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바로 아크릴 물감을 사는 거였다. 2년 전에 부직포를 쓰고 남은 것이 있었다. 제법 커서 무엇을 할까 생각하던 차에 문구점을 보고 반짝 생각이 난 거였다. 

아크릴 물감 12색을 사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부직포를 꺼냈다. 봄맞이 커튼을 만들고 싶었다.

창문 크기를 쟀다. 그리고 가위로 잘랐다. 가위질 부분은 자연스레 실올이 보이도록 했다. 기분이 좋아졌다. 문구점에서 사온 사탕을 달그락 거리는데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사과를 반으로 뚝 잘랐다. 잘라진 면에 문구점에서 사온 연두색과 빨간색 아크릴 물감을 붓으로 쓱쓱 칠했다. 그 다음 부직포에 조심스레 꾸욱 눌러 찍었다. 잠시 후 부직포에 연둣빛과 빨간빛 사과 반쪽 모양이 줄줄줄 반짝였다. 꼭 새콤달콤 사과향이 솔솔 풍겨 나올 것만 같았다. 멋진 커튼이 탄생했다. 봄의 커튼으로는 딱이다. 커튼집게는 나무집게로 하니 잘 어울렸다. 

어두웠던 겨울 커튼을 떼고 새로 다니 한결 방이 환해졌다. 완연한 봄이 되어 창문 사이로 봄햇살이 비치면 부직포 사과커튼이 더 산뜻할 것 같았다. 또 살짝 열린 창문 사이로 봄바람이 들어와 사과커튼이 살랑거린다면 더 운치 있을 것 같았다. 

김경구 작가
김경구 작가

봄밤 달빛에 보이는 사과모양은 어떨까 벌써부터 설렘이 달빛처럼 출렁거린다.

조만간 또 문구점에 들를 생각이다. 미처 보지 못한 물건이 있나 싶어서다. 또한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기 때문이다.

문구점은 흑백으로 변해있던 추억을 알록달록하게 만들어 줄 것만 같다. 어쩌면 너무 까매서 보이지 않은 추억도 새록새록 연둣빛 새싹처럼 쏘옥 솟아나게 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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