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한겨울 우리 집 베란다에 꽃이 만발하게 피었다, 저마다의 모습으로 한껏 멋을 낸 앙증맞은 그들과 아침 인사로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한다. 애플블로썸, 스완랜드핑크, 마리루이스, 랑고화이트….. 그 이름을 불러 줄 때 내게로 와서 나의 꽃, 나의 의미가 된 제라늄을 키우는 재미가 솔솔하다. 같은 색, 같은 모양인 듯해도 서로 다른 것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이쁘게 보이려 키 재기를 한다. 생명 있는 것들을 돌보며 또 다른 생명으로 번식하며 자라는 것을 보는 기쁨은 아마도 인간 본연의 마음일 것이다.

젊을 땐 일하는 엄마로 우리 집 네 아이들을 키우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다. 게다가 큰 아이와 막내의 터울이 열 살 이상이다 보니 육아 기간이 길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 장난감이나 옷가지며 책, 육아용품 등을 바로 물려주지 못해 집안 정리가 어려웠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러 형제들끼리 부비고 얽히며 위, 아래, 옆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반짝반짝 저마다의 빛을 내는 네 개의 보석이 나에게 가장 큰 재산이 된 것이다. 가정 안에서 작은 사회를 이루던 아이들을 하나 둘 보내고 나니 또 다시 새로운 생명이 내게로 왔다. 꽃보다 아름다운 다섯 손주들이 세월의 훈장이다.

남들보다 많은 자녀를 키운 엄마로 시집가는 딸들에게 자유를 선언했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취미활동과 운동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싶다고. 너희 아이들은 너희가 키우되, 부득불 엄마가 꼭 필요할 때는 친정엄마 찬스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이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 할 수 없을 때, 부부동반 모임이나, 잠깐 커피타임을 갖고 싶을 때는 기꺼이 도우미가 되어주겠다고 했다. 고맙게도 자녀들이 제 자식들을 잘 키우고 부부사이가 애틋한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 모습이 미덥기 그지없다.

하모니카, 난타, 바느질, 생활공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한동안 다람쥐 쳇바퀴 돌듯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했다. 몇 년을 바쁘게 살다보니 백수가 과로사 한다고 다시 또 천천히 느긋하게 보내는 한가로운 여유가 갖고 싶어진다. 간사한 게 사람 마음이라더니 변덕스런 이 마음을 어찌할까.

나에게 있는 씨앗을 나누고 아낌없이 주고받는 꽃을 사랑하는 여인들을 만났다. 제 집 정원의 나무와 꽃을 심고, 가꾸고, 정보를 공유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꽃구경하러 간 집에서 작은 화분 3개를 잘 키워보라며 분양해 주었다, 햇볕과 습도, 물주기, 바람길 만들기, 삽목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그 때부터 자료를 찾아가며 식물관리에 대해 열심히 알아갔다. 그 잎의 독특한 향내를 벌레들이 싫어한다고 한다. 모기에 잘 물리는 내게 딱 맞는 식물이다. 예뻐하며 사랑을 주었더니 곁가지에서 새잎이 돋아나고, 작은 봉오리가 맺혔다. 쏘옥 얼굴을 내밀며 함빡 웃음을 터뜨리는 생명을 보는 것은 살아있음을 느끼는 또 다른 기쁨이다.

젊을 때는 꽃이 피는지 계절이 지나 가는지 하늘과 자연을 바라 볼 겨를 없이 오로지 아이들만 보였다. 세상의 어머니들은 모두 다 그렇게 자녀들을 키웠을 것이다. 그것이 어찌 사람뿐 이겠는가. 그런데 이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녀가 사랑에 빠지듯 꽃을 가꾸고 돌보는 일에 깊이 빠져 들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비로소 보이고,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꼭 맞는 말이다.

이경영 수필가
이경영 수필가

정월 대보름에 태어난 나는 올 해도 어김없이 특별한 생일선물을 받았다. 자녀들이 준비한 대형 현수막 카드는 거실 창을 가득 채웠다. '엄마의 아름다운 꽃 청춘으로 인해 우리라는 예쁜 꽃이 피었습니다. 그 사랑에 감사하며 우리로 인해 못다 핀 청춘의 꽃! 효도하며 꽃 피워드릴게요. 오래오래 건강하게 함께 해 주세요. 엄마의 분신 사남매 드림. ' 가슴이 뜨거워지는 눈물겨운 메시지다. 사람 꽃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꽃밭이 된 나의 베란다를 보며 삶의 모든 순간이 언제까지나 꽃처럼 피어나는 꽃띠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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