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 ㈜대원 경영지원본부장·수필가

빈산에 나무들이 떨고 있다. 처마에 물고기도 사납게 날아다닌다. 나무와 물고기를 뒤흔드는 바람 소리에 방안에서도 싸한 공기가 느껴진다. 하늘은 맑은데 멀리 능선과 눈앞에 나목이 즐비한 앞산에는 잔설이 희끗희끗하다. 잔설 위에 또 눈이 내려 녹을 줄을 모른다. 하늘정원 소사나무와 가침박달나무 등 화분의 식물이 걱정이다. 월동 되는 식물이지만, 맹추위를 어찌 알몸으로 견뎌내랴. 세상의 만물이 동장군에 떨고 있다.

주말을 지내고 출근하니 수도관이 얼어 물이 나오지를 않는다. 강추위 예보에 한 방울씩 물이 떨어지도록 조치해 놓았는데 소용이 없었든가 보다. 사람들의 손과 발을 묶어 놓았으니 동장군의 위력이 대단하다. 수선공을 불러 온풍기로 얼음을 수 시간 녹이고 오후가 되어서야 물이 나온다. 이런 사태가 어디 직장뿐이랴. 제주도는 강풍과 폭설로 수만 명의 발목을 잡고 늘어져 아우성치는 소리가 예까지 들린다. 전국이 북극한파로 여기저기에서 앓는 소리가 들린다.

절기가 무색하다. 자연이 내린 형벌인가. 기온이 극과 극을 달린다. 영하 50도가 넘는 나라 사람들은 머리에서 신발까지 온몸을 싸매어 눈사람처럼 부풀려 다닌다. 입김에 눈썹과 속눈썹이 무서리가 하얗게 얼어붙으니 정녕코 동장군이 코앞에 있다. 어디 그뿐이랴. 아열대기후인 대만은 영상 8도에 백여 명이 얼어 죽었다는 기사를 접한다. 우리나라 기온을 생각하면, 춥지도 않은 날씨이다. 더운 나라 사람들은 추위를 경험하지 못한 탓이다. 전 세계가 이상 기온에 떨고 있으니 앞으로 어떤 기후가 닥쳐올지 두려울 뿐이다. 예전 체감온도가 영하 30도 이상의 추위를 이겨내던 유년 시절이 떠오른다.

바지랑대에 기저귀를 널어놓으면 널빤지처럼 얼어 버린다. 방문의 문고리를 만지면 손이 쩍쩍 달라붙을 정도로 추웠다. 처마에는 기왓골마다 달린 길고 긴 고드름으로 친구들과 칼싸움하며 손등에 얼음이 배기도록 놀았다. 둠벙도 꽁꽁 얼어붙어 동네 아이들은 추운 줄도 모르고 빙판 위를 썰매로 돌고 돌아도 지루한 줄을 몰랐다. 무엇보다 눈이 내리면, 약속이나 한 듯 비료 포대를 하나씩 들고 친구네 과수원으로 몰려든다. 구릉지에서 엉덩이가 멍이 들 정도로 눈썰매를 지치다 저녁때가 지나 어머니에게 혼꾸멍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늘도 바람 소리가 심상치가 않다. 손녀가 놀이터에 나가고 싶다고 보채고 있다. 아이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강추위를 어찌 알랴. 아이 엄마가 고개를 저으니 할미가 어쩌랴. 궁리 끝에 동장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오늘같이 추운 날은 '동장군이 우리 곁에 와 있어, 밖에 나가면 얼음으로 만들어 버려. 눈사람과 얼음 알지?' 아이는 두 눈이 동그래져 귀가 솔깃하여 듣는 모습이다. 동장군이 어떻게 생겼느냐고, 어디에 있느냐고 질문이 이어진다. 매서운 눈보라와 함께 오고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동장군이 올 때는 대문을 꼭 닫아야 한다고 말하니 아이는 쏜살같이 현관으로 달려간다. 동장군이 올까 봐 겁이 났던가 보다. 문이 닫혔는지 확인하고 돌아오는 손주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이은희 ㈜대원 경영지원본부장·수필가
이은희 ㈜대원 경영지원본부장·수필가

동장군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살아 있다. 연암 박지원과 이덕무는 문학의 정신을 동심童心에서 찾았다고 했던가. 거짓이 난무하고 위선이 판치며 죽은 말이 허공을 떠도는 세상에 동심은 어디에 있는가. 동심은 우리 마음속에 머무른다. 세상과 절기를 모르고 납신 동장군님, 경기도 어려우니 순하게 다녀가시길. 부디 내 어린 시절처럼 당신의 모습을 손녀에게 들키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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