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영기 전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

돌담길 따라 모퉁이를 돌았다. 담자락에 핀 민들레가 방긋 웃는다. 파아란 양철대문 앞에 삽살개가 꼬리를 흔들며 나온다. 지난 날 학창 시절 자취를 하던 집이다. 삐그덕 대문을 열고 주인아주머니를 찾았다. 방문턱에 팔을 괸 채 안경너머로 힐끗 나를 쳐다본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였더니 이게 누구야? 건넌방에서 공부하던 학생 아닌가. 놀라움 반 반가움 반 안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골목길을 걸으며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랬던 추억이 떠오른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 터덜터덜 걸어오던 길이다. 골목길 모퉁이에서 아름다운 선율의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이층집 창문에 긴 머리를 한 여학생이 베토벤의 운명 곡을 연주하고 있는 그림자가 보인다. 한참동안 꿈속을 헤매는 것처럼 넋을 잃고 들었다. 안단테로 시작하여 메조포르테를 지날 때는 가슴이 쿵쾅거렸다. 새로운 꿈과 소망을 던져 주는 듯 했다. 아름다운 사랑의 꿈도 꾸었고 배고픔에 허기를 물로 채우며 밤늦도록 만학의 세계를 걷기도 했다.

그날도 연탄아궁이에 밥을 데우고 된장국을 끓이려고 했다. 쇠고랑으로 연탄통을 끌어내 보니 하얗게 재만 남았고, 방바닥은 차가웠다. 우리 집 연탄불이 왜 그리 자주 꺼져 있는지 도대체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숯불을 붙여서 연탄구멍을 맞추면 검은 연기가 부엌 밖으로 피어올라 하늘을 향해 날아간다. "학생 연탄불이 꺼졌구먼, 우리 집 아궁이에서 불씨를 가져가게나." "괜찮아요 금방 붙을 거예요." 불이 빨리 붙도록 부채질을 해댔다. 숯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매워 눈물이 났다.

전등불을 켜고 테이블 앞에 앉았다. 책상에는 빈 노트와 볼펜 한 자루가 나뒹굴고 있다. 어머니는 시장난전에서 채소를 팔았다. 태어난 장소와 부모의 만남에 따라 어떤 이는 풍요롭게 살고 누군가는 가난의 설움에 흐느껴야 하는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춘기 소년은 세상이 원망스럽고 불만스러운 마음뿐이다. 창밖에 떠가는 먹구름은 달빛도 가리웠다.

갑자기 문밖에서 물건을 세차게 내동댕이치는 소리가 들린다. "야 이놈아! 집에 먼저 왔으면 연탄불이라도 피워 놓았어야지" 하며 나무라신다. 어머니가 시장에서 돌아오신 거다. 하루 종일 장사를 하느라 점심도 제때 먹지 못하셨다. 밥을 지으려고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려니 짜증이 나셨나보다. 옆방에 세 들어 사는 노처녀가 한마디 거든다. "아이구 할머니 순진한 학생이 뭘 알겠어요?" "우리 집 된장찌개와 마른반찬 조금 있어요. 조금 가져다 드세요." 한다. 자존심이 강한 어머니는 대답도 하지 않고 나를 밖으로 불러낸다. 나는 멱살을 잡힌 채 뒷골목으로 끌려갔다.

"그래 공부만 하면 다냐?

비가 이렇게 오는데 마중이라도 나오면 어느 하늘 벼락 칠까?"

등짝을 후려친다.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서로 배려하고 돕는 것이 가족인데 나의 배고픔에 속상해 하고만 있었으니 말이다. 철없는 나의 행동이 더욱 원망스러웠다. 몹시도 서럽고 긴 밤이었다. 잠을 뒤척이며, 고단한 삶의 아픔을 곱씹어야만 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저녁 때 돌담길을 따라 집으로 들어 왔을 때다. 청국장을 끓인 구수한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우리 집 연탄불이 아궁이 밖으로 꺼내져 있고, 그 위에는 이름 모를 청국장 냄비가 올려져있는 것이 아닌가. 주인집 아주머니가 낮에 몰래 사용하는 바람에 연탄불이 자주 꺼지게 됐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가슴에 응어리가 치밀어 올랐다.

김영기 전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
김영기 전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

이 골목길은 나에게 가난의 아픔을 느끼게 했고, 연인의 사랑을 꿈꾸게 했다. 어머니의 사랑에 눈물지으며 외로움을 떨쳐 버린 추억의 앨범이 있는 곳이다. 다시는 돌아 갈 수 없는 인생의 강에서 고독과 아픔을 되새겨 본다. 골목길을 돌아서는 길엔 마른 바람이 옷깃을 스민다. 하늘엔 살빛 낮달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다시 걷고 싶은 길이다. 앨범 속에 추억의 한 장을 꼽아 놓는다. 돌담길 아래 제비꽃이 보랏빛 몸짓으로 작별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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