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독립문
독립문

우리나라는 오랜 역사 속에서 지리적 여건과 정치적 현상 등에서 비롯된 사대(事大) 의식과 사상이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마땅히 그래야 되는 전통처럼 이어 내려와 자주(自主) 독립 국가를 이루는데 큰 걸림돌이 되어 왔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외세를 빌어 삼국을 통일한 것이나 왕위에 오르기 전에 황제의 승낙을 받고 조공을 바치던 친명의 사대가 그랬고, 대륙진출의 길목을 찾느라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던 왜국에 짓밟혔을 때 그들의 힘에 붙좇던 친일이 그랬다.

친미·러·중·몽·일 등의 사대는 모두 나라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항변하겠지만, 그로 인해 자주권을 잃고 수많은 인명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희생되었으며, 황금 같은 옥토가 갈기갈기 찢겨나갔음은 또 무슨 명분이었는가?

이는 지구상에서 서로 인접해 있는 많은 나라들이 침략과 회복을 되풀이하면서 영욕의 역사를 차곡차곡 쌓아온 것과 다름 아니며, 그 과정은 아직도 진행 중으로 언제쯤 끝날 것이라는 기약도 없다.

그 중 하나로 문명국가들의 관심대상인 한반도는 오래전부터 뜨거운 감자(hot potato)로 부상되면서 원근 간 힘센 나라들이 군침을 삼키기에 충분했다. 그 틈새에서 우리는 어떤 눈치도 살피지 않는 작지만 온전한 자주독립의 강대국으로 비상하려고 안간힘을 써왔으나 '뛰어봤자 벼룩'이라며 손잡고 같이 가자고 찌근덕거리는 이웃들을 잘못 길들여진 민족성 때문에 싹둑 자르지도 못하고 공존공영의 미덕에 실려 관계의 팔짱에 매달려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시아의 극동에 백의민족으로 터 잡아 수백천년을 줄기차게 흘러오면서 드넓은 영토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도 없이 분열과 통합을 거듭하면서 형성된 사대는 턱없이 밀리는 국력회복의 수단이었다고 하면 고개가 끄덕일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손에 쥐어진 것은 무엇이었으며, 없다면 실현가능한 사대주의 배격 해법을 암색이라도 해보았나? 19세기말에 독립정신을 길러 한민족의 이런 치욕을 씻어버리고 자주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독립협회 주관으로 수백 년 된 서대문 밖의 모화관 앞 정문(迎恩門)을 헐고 그 자리에 세워놓은 독립문(1898)은 오늘도 사대와 친일을 떨어버리고 당당한 자주독립국가로 자리 잡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두 발을 힘차게 딛고 우뚝서있다.

외세에 의존하여 한반도의 자주독립을 시도했지만 큰 일 치르는데 젓가락 하나 올려놓은 지원자들의 자기 몫 챙기기 끈을 놓지 않으니 그 꿈은 언감생심이었다.

남북평화통일 프로젝트나 대중의 비교열세인 인적 물적 교류와 대일의 반성 없는 과거사 청산문제 등도 같은 흐름을 타는 양상인데, 일보 전진을 위한 후퇴나 대탐소실을 위한 모계임을 알면서 어느 누가 자신의 피해를 감수하면서 상대를 위해 피를 흘리겠는가?

사대의식이 우리나라 발전에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는 역사를 잠시만 돌아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그 대가는 모두가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된 침략행위의 일환이었다. 이런 일에 우리는 언제나 피해 쪽임을 알면서도 나라의 미래보다는 사적인 영달이 먼저였을 터이니 다음 단계는 불문가지였으리라.

큰일을 한다는 이들이 젖먹이들도 다 아는 '공짜는 없다'는 말을 모를 리 없으련만, 내 발로 중심 잡아 일어서지(自主獨立) 않고 기대면 푹 고꾸라지게 되니 제발 국익에 반하는 일은 결단코 하지 말 일이다.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무식한 사람이 효자란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내 부모 내가 모신다는 마음만으로 정성을 다하니 보는 이들이 효자라 칭송하는데, 식자우환이라고 땅 팔아 끝까지 잘 가르쳐놓은 자식은 남은 땅 안 준다고 제 아비를 찌르는 망나니가 되더란다.

바라건대 백성들이 나라 안위 걱정 안하고 서로 아끼면서 평안하게 잘 살아가도록 제발 방해되는 것들을 모조리 정리해 주길.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