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2월 말이 되면서 은근히 3월이 빨리 오길 바랐다. 3월은 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봄은 추운 겨울 끝에 와서 더 따듯하고 밝은 느낌이다. 아직 다 가져가지 못한 겨울 여운이 남아있지만 마음만큼은 봄이다.

그래서 일부러 연두색이나 분홍색의 화사한 니트나 카디건을 꺼내 입는다.

봄을 기다리는 건 어쩌면 겨울동안 보지 못했던 꽃과 연둣빛 나무를 볼 수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봄은 참 여러 색이다. 겨울하면 하얀 색이 먼저 떠오르지만 봄은 한 가지 색으로 말하긴 쉽지 않다. 봄이면 노란색 개나리꽃, 분홍색 진달래꽃, 하얀 목련에 연둣빛 물이 오르는 나무까지 참 다양하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이후 산책길에 만나는 첫 진달래꽃은 귀한 보물을 찾은 듯 반갑다. 막 설레어 온다. 바람이라도 살짝 불면 꼭 작은 분홍새 같은 느낌이 든다. 파르르 작은 날개를 떠는 분홍새 한 마리.

또 함께 모여 핀 진달래는 멀리서 보면 분홍파도 같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홍 꽃파도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바다의 파도소리만큼 아름다운 꽃파도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노란색 개나리는 아주 친숙하다. 어릴 적 살던 집 뒤란에 줄줄이 늘어진 아주 큰 개나리가 있었다. 나무줄기를 타고 왔다 갔다 하는 타잔이 타도 될 것 같았다.

실제로 어릴 적에 개나리줄기를 잡고 타잔놀이를 했다. 그러다 뚝 떨어졌다. 하마터면 장독대 큰항아리를 깰 뻔 했다. 가지마다 노란 개나리꽃이 팡팡팡 피면 노란 물줄기 같다.

또 어떨 땐 쫑쫑쫑 가는 보송보송 노란 병아리 같다. 아니면 밤하늘의 별이 와르르 떨어져 미처 못 돌아간 것 같단 생각도 많이 들었다.

그런데 봄이 되면 가끔씩은 겨울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때 하얀 목련은 그 허전한 마음을 가득 꽉 채워준다.

집 근처 호암지에는 벚꽃도 많지만 목련나무도 많다. 밤에는 달빛에 목련꽃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꼭 맑은 옹달샘 물로 꽃잎 한 장 한 장을 정성스럽게 닦아 놓은 것 같다. 밤에는 호암지에서 고개를 들고 걷는다. 하얀 목련꽃을 보며 빨리 빨리 걸으면 마치 하얀 눈송이가 내 머리 위로 뚝뚝 떨어지는 듯하다.

해마다 봄이 오면 이런 나의 행동은 반복된다. 하얀 달빛을 맞으며 머리 위로 쏟아지는 한 뭉치 눈송이 같은 하얀 목련꽃송이는 특별한 선물이다.

난 그림을 좋아한다. 전시회 가서 감상하는 것도 좋아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그 후 5학년부터 6학년까지는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토요일과 일요일만 빼놓고 거의 하루에 한 장씩 그린 것 같다.

다 그린 스케치북이 높이 쌓여 있었다. 주로 미술반에 남아서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 집과 나무, 꽃, 들판… 주로 친구들은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렸지만 미술반 아이들은 모두 물감을 사용했다.

물감으로 여러 색을 섞다 보면 새롭게 나오는 색깔이 신기하고 좋았다. 초등학교 때 많이 쓴 색은 녹색 계열이다. 연두색과 녹색, 초록색. 이런 색에다 노란색을 살짝 섞으면 또 나름 매력적인 색깔이 나왔다.

선생님으로부터 나무를 잘 그린다는 칭찬을 들은 후 나의 녹색 계열 사랑은 끝이 없었다. 새 물감을 사도 금세 연두색과 녹색, 초록색 물감이 줄어들었다. 다른 색 물감은 별로 쓰지 않았는데… 그래서 새 물감을 사기가 망설여졌다.

그래선지 지금도 녹색 계열 색을 좋아한다. 결혼 전에는 녹색 계열 옷이 정말 많았다. 양말이나 모자까지도.

그런데 요즘에는 분홍색도 좋아지고 노란색도 좋아졌다. 그러다 보니 특히 봄에는 분홍색 셔츠에 회색 카디건을 입기도 하고, 연한 노란색 손수건만한 스카프도 매곤 한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참 푹하다. 곧 여기저기 봄꽃이 환하게 필 것이다. 조만간 첫 보물 같은 분홍색 진달래를 만나러 산으로 가야겠다. 입을 크게 벌려 봄바람도 배불리 먹어야겠다.

김경구 아동문학가 
김경구 아동문학가 

진달래꽃 분홍꽃파도를 만나면 흥얼흥얼 봄에 관한 동요를 불러야겠다. 왠지 봄은 동요가 어울린다. 또한 왠지 봄은 해마다 만나지만 다른 계절에 비해 더 애틋함이 든다.

여러 색으로 다가오는 봄. 한 해 한 해 맞는 봄. 봄은 내 가슴에 삶의 색깔 나이테를 동그랗게 하나 그려 줄 것이다. 먼 후일 그리운 봄의 추억을 하나 하나 풀어내면 향긋한 봄의 색깔도 풀려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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