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김영기 전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

지난밤 서리가 내렸다. 잎자루의 떨켜는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아픔들을 무심히 떨어뜨린다. 앙상한 나무 가지마다 서린 눈꽃이 피었다. 거북등처럼 굳어진 나목에는 땀방울이 말랐다. 쓸쓸한 바람은 나무껍질에 인고의 두툼한 골을 만들고, 가지에 붙어 있던 잎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나목 둥치에 떨어져 뒹군다. 낙엽들은 바스락거리며 숨을 죽인다.

하늬바람이 불어온다. 나목은 마지막 남은 잎마저 떠나보내고 외로이 눈보라를 맞을 준비를 한다. 보금자리를 만들었던 숲속에는 새들마저 모두 떠나 버렸다. 윤슬처럼 빛나던 잎들을 보낸 들판에는 황량한 바람이 불고, 적막하게 홀로서 있는 나목엔 침묵만 흐른다. 추운 겨울 시련을 참고 견디려면 자신의 몸을 최소한으로 가볍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떨켜의 매듭에 도드라진 상처를 어루만지며 늦가을을 보내고 있다. 진하고 굵은 나이테가 한 주름 잡히는 것이다.

수백 년을 살아온 고목은 나라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칼바람도 이겨냈다. 긴 세월동안 몸통은 텅빈 채 가지들의 버팀목이 되느라 굽은 허리를 펴지 못하고 서있다. 마치 자식을 위해 온 몸이 망가져도 모든 걸 내어주는 부모 마음처럼 최후의 순간 까지 잎을 내려고 안간 힘을 쏟는다. 겉껍질은 뜨거운 햇빛에 바래며, 비바람 맞고 삭아서 볼품이 없는데도 새순을 간직하려는 간절한 갈망은 변함이 없다.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나 역시 젊음의 화려함이 사라진 한그루 가을나무다. 곱던 피부색이 변하고 주름살만 늘었다. 잘 보이던 글씨도 안경을 써야만 보이고, 조금만 일하거나 운동을 해도 근육이 삐그덕 거린다. 잠시 앉았다 일어서도 무릎이 힘겨워 질 때면, 모든 걸 소진하고 나뭇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가을나무 닮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앙상한 나뭇가지 남은 나목의 길을 지날 때면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사색에 잠긴다. 무거운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다음 세상을 꿋꿋이 기다리는 모습은 작은 어려움에도 당황하며 동동거리는 빈약한 나의 삶을 부끄럽게 한다.

작금에 와서는 결혼의 떨켜로 세 딸을 모두 시집보내고 막내아들 하나만 고목에 붙어있다. 왁자지껄 하던 집안에는 잔소리 할 대상이 없어졌다. 먹을 것이 있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집안은 하루 종일 휑하니 조용한 바람만 분다. 하여 자식은 품안에 있을 때가 자식이라 하는가 보다. 이제 머리에 흰서리가 내린 우리 부부만 남았다. 비타민 같은 손주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행복을 채운다.

철이 들기도 전에 작은 사랑을 표현할 기회도 주지 않고 부모님은 세상을 떠나셨다. 기억의 한 자락에 받은 사랑을 움켜잡고 그리움만 남기고 있다. 언제나 든든했던 형님들마저 내 곁을 떠나고 빈자리만 남겼다. 허리 굽은 나목처럼 삶의 무게를 등에 지고, 모두가 걸어가는 이 길을 홀로 걸어가야만 한다.

내 속에는 떨켜 세포층이 성장하지 못해, 떠날 때가 다된 세상의 마른 잎들을 붙들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있다. 세상 풍파를 견디며 살아왔기에 모든 짐들을 내려놓고 홀가분한 몸으로 서 있어야 함에도 부질없는 것들을 붙잡고 흔들리고 있다.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내가 있던 본향으로 갈 때는 순서가 없다. 흘러간 세월을 탓하기보다는 무정한 세월을 멈출 수 없음이 안타깝다.

김영기 전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
김영기 전 충북교육과학연구원장

만남의 기쁨도 이별의 아픔도 세월의 한순간, 일만 겁의 정점일 뿐이다. 삶이 외롭고 힘겨워도 봄은 어김없이 다시 돌아온다.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황량한 들판에서 얼음이 녹기를 기다리며, 흙덩이가 따스해 지기를 나목은 묵묵히 기다려야 한다. 온몸을 움츠리게 하는 북풍과 살을 에는 슬픔이 지나면 고요한 아침 해가 새 세상을 보게 할 것이다. 잠간 소풍 나와 땅에 떨어진 낙엽들과 추억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가을 나목의 든든함 일지도 모른다. 저 강을 건너기 전에 익어가는 삶의 여정을 도란도란 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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