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은희㈜대원 경영지원본부장·수필가

망령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누구 말대로 세상이 미쳐가는가. 얼마 전 이태원에서 망령의 손짓에 귀한 목숨을 앗아가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어디 그뿐이랴. 대형마트가 경쟁의 거대한 망령이 되어 인정사정없이 작은 상점들을 집어삼키고 있다. 도시는 시장경제 원리를 말하지만, 상어처럼 입을 벌리고 작은 마을을 잡아먹는 격이다. 실제로 젊은이들이 빠져나간 농촌은 노인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머지않아 노인들도 하나둘 사라지고,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마을은 결국 사라지리라. 이렇듯 익숙한 모습의 망령들은 어디서든 튀어나오리라.

망령은 지인의 병실에서도 마주한다. 전염병으로 환자가 늘어나선지 간병인을 구하기가 어렵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눈치만 보고 있는 격이다. 간병인은 보호자를 대신하여 환자를 간호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환자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보호자의 눈을 속이니 어쩌랴. 움직이지 못하는 어르신이 말을 잃었다고 감정 또한 없으랴. 자신이 알고 하늘이 보고 있잖은가. 손바닥으로 자기 눈만 가리는 어리숙한 사람이다. 더욱이 선량한 간병인들까지 욕을 먹이는 행위가 아니랴.

장수가 좋은 것만은 아닌 듯싶어 서글프다. 참으로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나이 들고 병들면, 누군가에게 의탁하게 마련이다. 그 대상이 병원이든 요양원이든 간병인이든, 그분도 환자의 처지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유영만은 "아마추어는 언어가 가난하다. 언어가 가난하니 생각도 가난하고, 생각이 가난하니 행동의 폭도 좁다."라고 적는다. 물고기의 비늘에 생의 물살을 담듯 말하지 않아도 그 사람에 삶의 비늘이 느껴진다.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거친 언어와 행위를 하는 건, 자기 업業에 무르익지 않은 사람이다. 얼마 전 본 영화 속에도 망령들이 나타난다.

복수의 망령은 죽어서도 아바타를 보낸다. 가족은 뒤좇는 망령 때문에 둥지를 떠나야만 한다. 평온한 정글을 떠나 새로운 집단에 들어 물의 일상을 꾸려나간다. 가족은 망령들이 좇고 있다는 극도의 불안감 속에서도 사랑으로 이겨내고자 다짐한다. 사랑의 기운은 이웃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을 돕고자 나선다. 식구를 잃는 안타까운 슬픔과 고통 속에서 가족의 결속력은 더욱 강해진다.

아바타는 사랑의 진리를 깨닫게 하는 영화이다. 과학이 아무리 첨단으로 발전해도 인간의 고유한 영역은 넘나들 수가 없다. 아바타를 보내지만, 인간의 애정을 끊을 수가 없다. 인간의 숭고한 사랑은 고난과 고통이 닥쳐올수록 더욱 견고해지기 때문이다. 망령들은 많은 사람을 죽이고, 생활의 터전을 파괴하고 도망치며 다음을 기약한다. 망령은 언제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망령된 행위는 더할 나위 없이 부질없음을.

우리 일상을 촘촘히 '깊이 읽기'가 긴요하다. 무엇보다 해마〔뇌〕에 헛된 망령이 들지 않기를 원한다. 스팸 메일spam mail이나 문자 메시지로 민폐를 일으키는 망령들. 좁은 땅덩어리에서 분단의 아픔도 아물지 않았는데, 미사일을 쏘아대는 망령든 집단. 또한, 누군가의 소란한 가슴팍에 이끌려 아이를 돌보지 않아 굶어 죽게 만든 사람이 어디 정상이랴. 정에 굶주린 망령이 틈새를 노리고 있다. 가족과 친구가, 내 이웃이 안전하도록 서로가 지켜주어야 하리라.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이은희 수필가·㈜대원 전무이사

사물을 꿰뚫어 보는 지혜의 눈이 필요하다. 요즘 젊은이들은 혼자 자유롭기를 원한다. 성년은 결혼을 꺼리고, 신혼부부는 아이 낳기를 두려워한다. 학자들은 인구 감소로 몇 개의 지역이 사라진다고 예견하고 있다. 아기가 사라지고, 노인이 사라지고, 마을이 사라진 뒤에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 남으랴. 삶의 공간이 사라지면, 소중한 추억도 잊히리라. 눈앞에 벌어지는 이 풍경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또, 다른 망령들이 떠돌지 않도록 마음 단속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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