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너도바람꽃
너도바람꽃

계곡에서 차디찬 골바람을 이겨내고 빼꼼 눈인사한다. 얄캉하다. 산속에 숨어서 몰래 피어있다. 잠시 피어나 찾는 이 있으면 얼굴 보여주고 혹 찾지 못하면 바람이 친구가 되는 너도바람꽃. 별처럼 생겼다. 사랑스러운 모습에 눈물이 나려고 한다. 얼마나 보고 싶었던가. 사진으로만 보던 꽃은 앙증맞도록 작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칠 일이다. 절 옆 계곡에서 수줍은 듯 고개 숙이고 있다. 목탁 소리 들으며 긴 겨울 보내다가 있는 힘껏 꽃을 피워 올렸을 테다. 예쁜 꽃을 맞이하려면 낮은 자세로 임하라는 뜻인가. 쪼끄만 데다가 고개 숙인 꽃을 찍으려면 무릎 꿇기도 하고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초점을 맞춘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행복감은 최고이다.

너도바람꽃은 가운데에 둥글게 배치된 노란 꿀샘이 있다. 꽃잎이 나야 할 자리에는 젤리 같은 것이 오종종히 박혀 있다. 너무 작아서 언뜻 보면 암술인지 수술인지 구별이 잘 안 되는데 그게 바로 꿀을 품은 꿀샘이다. 봄이 오기도 전에 활동하는 몇 안 되는 곤충을 전략적으로 불러들일 목적으로 그 작은 생명체는 스스로 꿀을 빚는다.

키가 작은 너도바람꽃은 큰 나무들이 우거지기 전에 결실해야 종족을 보존할 수 있기에 서둘러 꽃을 피우는 전략을 세웠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참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지 싶다.

수줍은 새색시 같은 느낌이 있고 얼굴에 노란 화장을 한 농염한 여인의 모습 같기도 한 꽃이 대견해 보인다.

너도바람꽃은 복수초 다음으로 일찍 피는 꽃으로 겨울과 봄의 계절을 나누는 풀이란 뜻으로 절분초節分草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인적 드문 곳에서야 겨우 피는 희귀식물이지만 환경이 허락하는 장소에서는 군락을 이루며 핀다. 따스한 봄 햇살이, 부는 미풍이 꽃을 살살 보듬어주는 거 같다. 바람은 모양도 색깔도 없으니 볼 수가 없다. 우리가 만질 수도 없다. 봄이 오고 있다고, 이른 봄의 바람은 이런 모양이라고 말해주고 싶다는 듯이 골짜기마다 바람꽃들이 움트기 시작한다. 하얀 꽃잎이 살포시 숲으로 봄을 불러오고 있는 듯하다.

너도바람꽃 자그마한 몸체를 지탱하는 힘의 원천은 뿌리에 있다. 덩이뿌리를 땅속에 숨겨두고 최대한 둥글게 웅크린 자세로 혹독한 겨울을 지낸다. 숲에 경쟁자가 적을 때 그 뿌리에서 꽃대를 내고 일찍이 꽃을 피우고 서둘러 꿀을 빚는다. 어떤 날에는 눈을 맞으면서도 핀다. 개화한 지 몇 주 내, 모든 전술을 동원하여 곤충을 불러들이고 수정에 성공하고 열매를 맺는다.

봄이 채 가기도 전에 서둘러 열매를 맺고 씨앗을 퍼뜨린 후 숲에서 자취를 감춘다. 작고 동그란 구근에 다음 해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영양분을 저장해 두고서. 구근은 메마른 가뭄과 혹한을 견디어 내면서 수많은 세월을 살아냈을 테다.

바람꽃도 있고 너도바람꽃, 나도바람꽃도 있다. 꽃 이름에 '너도' 또는 '나도'라는 이름이 붙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원종보다 좀 모자란 느낌이 들면 '너도'라는 말을 붙이고 우월해 보이는 경우 '나도'라는 말을 붙인다고 한다.

척박함 속에 여리고 여리게 서둘러 아프게 피면서도 자기만의 색깔로 무늬를 만드는 꽃에 눈 맞춘다. 나는 요즘 상처받아 앙금이 남고 짜증 나는 감정으로 괴롭다고.

"너도 그래?" 바람꽃에 물으면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리며 '조급해하지 말고 여유 있게 기다리라'고 답할 것 같다. '너도'란 말에는 위로와 공감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꽃을 처음 본 이후로 꽃바람이 나 버렸다. 여리여리한 바람꽃,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꽃을 보고 싶어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바람꽃은 종류만도 20종이나 된다. 바람꽃의 큰 특징은 꽃잎처럼 보이는 게 모두 꽃받침이다.

너도바람꽃을 시작으로 변산바람꽃, 꿩의바람꽃을 만났다. 이제 만주바람꽃 나도바람꽃 홀아비바람꽃 회리바람꽃 등이 피어난다고 한다. 긴 기다림에 비해 순식간에 피었다가 지는 꽃. 이래저래 이른 봄부터 여름까지 바람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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