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햇살 따스한 봄이 오는 길목애서 한 템포 쉬어가기 위한 쉼표를 찍었다. 그것은 미처 끝내지 못한 숙제처럼 늘 가지고 있던 마음 속 무거운 짐 같은 것이었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오늘, 지금(Now), 바로 여기(Here)를 사는 것이다.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밝혀 미리 문서로 남겨두는 결정을 하기 까지는 잠깐의 고민이 있었다. 남편과 함께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나누고 아름답고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준비하기로 했다.

누구든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참살이 즉 웰빙(Well-being)을 꿈꾼다. 고령사회로 가고 있는 이때 사람들은 웰빙에서 웰다잉(Well-Dying)을 더한다. 죽음을 맞이할 때 두려워하고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고 당당하게 맞닥뜨리는 것이다. 잘 죽기 위해서 내 삶을 주체적으로 기약하고, 남길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숭고한 행위의 우선순위 중 하나가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 해 두는 것이라 생각한다.

생각과 말은 운명을 만든다. 오래 전 장기기증을 서약한 표식이 있는 운전 면허증을 나는 이미 가지고 있다. '내 몸의 어느 한 가지라도 누군가에게 빛이 되고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기꺼이 사용해도 좋다.' 는 약속이었다. 거기에 나의 마지막 죽음을 쓰다듬으면서 맞아 들여야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의 전환을 시도 하는 것이다. 향후 언젠가 생각지 못한 일이 닥쳤을 때, '그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참 잘했다. '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그래서 바로 실천에 옮겼다. 가까이 계시는 친정 엄마께 우리 부부는 이렇게 하기로 결심 했다는 의사를 밝혔다. 엄마는 "나도 그렇게 하고 싶다." 말씀하셨다. 엄마를 모시고 건강보험공단을 찾아 자발적 의사를 밝히고 자필 서명을 했다. 해가 쨍쨍할 때 비가 올 것을 대비해 우산을 준비하는 것이 보험이라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나 역시 미리 우산을 준비한 셈이다.

치료 효과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의료행위를 기꺼이 사양하고 스스로 주체적인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다만 연명의료를 결정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다. 병원에 입원중인 환자를 대신 할 수도 없고 환자 가족이 대신 작성 할 수도 없다. 단지 목숨을 이어가기 위한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착용, 체외 생명유지술 등 의학적 시술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면 의료기관에서는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기로 결정한다.

의료 기술의 발전과 의료보험의 혜택으로 인간의 기대수명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다. 인생을 마무리 하는 일에 정답은 없다. 마지막 시간을 콧줄을 꽂아 두고 가지 못하게 억지로 붙잡아두는 것은 단지 숨만 유지시키는 의료행위다.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남은 가족들에게도 마음의 짐, 의무의 짐을 지어주는 머무는 시간을 연장하는 것 뿐이다. 인생 후반의 삶과 성취에 대한 진정한 만족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모양새다.

이경영 수필가
이경영 수필가

너 나 할 것 없이 누구든 언젠가 알지 못하는 시간에 먼 길 떠나 처음 있던 하늘나라 본향(本鄕)으로 가게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나는 편안히 그리고 평안하게 다시 만날 것에 대한 소망으로 인사를 나누는 귀천(歸天)을 꿈꾼다. 진실로 잘 산다는 것은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사이에서 오늘을 사랑하며 현재를 즐기는 '카르페디엠' 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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