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어떤 일이 일어나면 아직 세상 바람을 쐬지 않은 어린아이는 궁금한 대로 묻고 따지면서 그 과정을 자세히 알려고 노력하지만, 풍진을 겪은 이는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풀려고 무진의 애를 쓴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 다행이다.

주말마다 놀러 오는 손자들이 할아버지가 책장위에 올려놓고서 가끔씩 퍼먹는 꿀 항아리를 보고 자기들도 먹어보려고 의자를 놓고 올라가서 꺼내려다 그만 중심을 잃어 항아리와 함께 넘어져 방바닥에 꿀이 질펀하다. 손가락으로 바닥에 흘린 꿀을 찍어 먹는 모습을 본 할아버지가 "미안하다 얘들아, 다음엔 혼자 먹지 않을게. / 아니에요, 할아버지. 저희가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할머니가 코로나로 돌아가신지 일 년이 되면서 첫 제사를 모시려고 가족들에게 꼭 참석해 달라며 문자와 전화로 안낼 했다. 아들과 딸들만 온다고 한다. 스물이 넘는 나머지 가족들도 모두 참석해 달라고 다시 연락하니 직장에 다니는 손자들이, "제사 꼭 지내야 해요?"

길에서 쓰러진 노인을 들쳐 업고서 병원으로 달려가 응급실로 들어가려는데 경비원이 마스크를 쓰고 들어오라며 제지를 한다. "그게 위급환자보다 더 중한가요? / 안 걸린 사람의 안전도 중하잖아요?"

마흔을 훌쩍 넘긴 미혼의 실업자 아들에게 팔순의 노부모가 제발 좀 집에서 나가 독립해서 살라고 간절하게 당부하는데, "싫어요. 제가 왜 그래야 해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에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아들에게 나가서 친구들하고 놀다오라며 등을 떠미는데, '난 친구보다 게임이 더 좋은 데?'

목발을 짚은 할머니가 어린 아이의 도움을 받아 지하철을 탔다. 손잡이를 잡을 수도 없고 빈자리도 없어서 몸을 지탱하느라 쩔쩔매고 있는데, 옆에 서있는 아저씨가 편히 앉아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학생에게, "학생, 불편하신 할머니에게 자리 좀 양보하면 안 될까? / 왜 내가 그래야 해요?"

자치단체의 수석국장이 정년으로 공석이 되는 자리에 유능한 적임자를 추천받는데, 대외 로비의 달인이라는 ?과장이 1순위로 올라왔고, 행정능력과 정책추진력 및 민원처리능력이 탁월하다는 ?과장은 차 순위였다. 임용권자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2순위 자를 임명했는데, 탈락된 자는 "제가 왜 그래야 되는 거죠?"

경찰직이 적성에 맞을 것 같아 경찰관이 되고 싶어 경찰대학을 지원하려는데, 담임과 진로담당 교사는 적성검사결과대로 의과대학을 가란다. 부모님도 같은 생각이다. "제 생각은 어디로 간 거죠?"

중장비를 구입하여 사업자등록을 하고 개인사업을 하는 이가 다른 사람보다 저렴하게 고향동네 진입로 포장공사를 맡아 하는데, 조합장이라는 이가 찾아와 조합에 가입하지 않았으니 일을 하지 말라며 방해를 한다. "왜 그래야 하죠?"

조합장 선거에 특정 학교출신 세 사람이 출마를 했다. 선거를 며칠 앞두고 지역개발위원장이 찾아와 자기 동생인 ?후보를 뽑으면 지역발전에 큰 도움을 줄 테니 꼭 좀 찍어달란다. "그런 분이라면 제가 안 찍어도 되지 않을까요?"

친구와 대중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며 조용히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손님이 나간 옆자리를 치우며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죄송합니다만 소리 좀 안 나게 조용히 해주시면 안 될까요? / 왜 그래야 하는데요?"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사이에서 종종 일어나는 대화패턴이다. 자기주장의 정당성이나 합리적인 대안을 상대방이 수용하지 못할 경우 사소한 갈등과 대립으로 가장 가깝고 친한 사이가 이해와 존중과 배려를 무너뜨리고 심각한 관계까지 치닫는다.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고것 하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옹졸함으로 호미로 막을 것을 포클레인으로도 어쩌지 못하고 극한상황까지 가기도 한다. 설마 그렇게까지!? 결국 그 설마에게 잡히는 건 그 사람이다. 이런 거 남에게서 찾으려 들지 말고 나를 잠깐만 돌아보자. 멧돼지 잡으려다 집돼지 잃는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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