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오계자 보은예총 회장

봄에는 꽃놀이, 가을은 단풍마중을 떠나는 벗으로부터 봄이 활짝 폈는데 왜 조용하냐는 재촉을 받았다. 바쁜 와중에도 반갑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꽃을 주제로 투어하자고 했으니 옷고시 태마여행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옷고시가 뭔데?" 하고 묻는 벗에게 "나도 문학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단언데 '향기롭게' 라는 뜻이야." 했더니 폰을 들고 박수를 치던 벗들 셋이 만났다. 사나흘 예정으로 목적지 결정도 없이 무작정 아랫녘을 생각다가 서해 쪽은 지난해 다녀왔으니 평사리부터 할매 삼총사의 이야기를 엮어 가기로 했다. 느긋하게 봄의 향기를 즐기자는 의미로 벗들에게는 생소한 단어지만 "옷고시!!"를 외치며 섬진강 십리 벚꽃 길을 누볐다. 뒤에 차가 오면 비켜 주고 사진도 찍으며 진심을 담아 "우리 인생도 옷고시!!" 라고 소리 지르며 벚꽃 터널에서 섬진강을 향해 웃음소리까지 버무려 강물에 띄웠다. 재밌다고 한 번 더 "인생도 옷고시!" 소리 질러 우주 공간으로 날려 보냈다.

매화를 찾아가는 중, 광양 맛집을 검색하니 왼 불고기 순대 등이 많이 뜨는지, 어찌어찌 검색하다가 게장 정식집을 찾아갔더니 간장게장도 양념게장도 먹을 만했다. 광양 야경도 좋다는 식당 사장님의 말에 무지개다리(해상보도교) 부근서 1박을 했다. 빨, 주, 노, 초 무지개 색깔과 여인들의 무지갯빛 이야기가 버물려서 행복했다

둘째 날 통영의 미륵산 케이블카와 중앙시장의 잔인한 점심까지 평범한 코스로 통과했다. 팔딱 팔딱 뛰고 푸다닥 거리는 생명을 보며 "우리 참 잔인하다." 친구의 말에 나도 공감은 했지만 잠시 잊고 즐겼다.

즉석 의견 일치로 거제도 바람의 언덕을 클릭해서 출발했다. 중간 중간 명승지 팻말이 보이면 기웃거려가면서 거제 바람과 스킨십을 했다. 언덕에 서서 난바다를 향해 분위기 잡는 세 여인은 스카프를 날리며 각자 무슨 생각을 하든 방해하지 않았다. 역시 바람의 언덕에선 휘날리는 스카프가 분위기 메이커다. 호텔을 검색하는 것도 여행객이 많은 장승포를 피해서 와현항 부근호텔을 예약 후 해변을 거닐며 세 여인들은 학창시절 추억을 꺼냈다. 2학년 때 "해부학 실습 날마다 점심 메뉴가 닭고기여서 나는 아예 식당엘 가지 않았어." 했더니 벗들도 그랬단다. 결국 3쿼터부터는 메뉴가 바뀌었다. 스무 살짜리 여학생들이 기숙사의 저녁 점호가 끝나면 수다스런 잡담이 흐르는데 그 중에서 황당했던 부분이 신랑감이었다. 의사는 너무 시간이 없고 교육자는 융통성이 없고 사업가는 바람둥이며 직업군인은 경직된 상태로 살아야 할 것 같으며 예술가는 자기밖에 모른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마땅한 신랑감이 없었다. 얼마나 철부지 공주들의 수다였는지 또 한바탕 드넓은 바다를 향해 웃으며 회포를 풀었다.

사흘째 날이 밝았다. 커튼을 열자 벌써 태양은 수면에 윤슬을 뿌리고 있다. 동시에 감탄사를 발산하며 늦잠꾸러기들은 기지개를 켰다. "우리 여기서 하루 더 자자" 는 친구의 뜻에 동의하고 짐 챙길 필요 없으니 슬로우 투어답게 거울 앞에선 장난꾸러기 할미들은 서로 주름 타령이었다.

오계자 보은예총 회장
오계자 보은예총 회장

자신의 외모를 천년 세월 버티며 뽐내고 있는 해금강 예술작품들은 볼 때마다 신비롭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반대로 사람의 손길로 가꾸어진 외도에서는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감탄은 나오지 않았다. 거제 식물원 가는 도중에 TV 방송에 소개되었다는 시조시인 이성구 선생님 부부가 가꾸며 운영하는 예술렌드에 들렀다. 그분의 책도 사서 사인도 받고 차도 마시며 인생 공부도 했다. 내 수필집 '깊은 소리'도 드렸다. 나보다 벗들이 더 좋아했다. 거제 식물원 산책을 끝으로 거제에서의 두 번째 밤은 외출도 없이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나흘 째, 거가대교를 거쳐 울라 오다가 경주 보문단지 꽃들과의 만남으로 우리의 행복했던 봄나들이도 옷고시 막을 내렸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