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조영의 수필가

봄이 시작될 무렵 냉이를 캐러 갔다. 길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눈여겨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그곳은 친환경으로 농사짓고 있는 주인을 알고 있다. 나물을 캐러 다니는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나지 않아 몇 년째 건강하고 깨끗한 냉이를 맘껏 캘 수 있었다. 올해도 내 밭 가듯 냉이를 캐러 갔다. 그러나 밭은 나무를 심어 변해 있었고 일부는 흙을 파헤쳐 놓아 냉이가 없었다. 근처 다른 밭도 가보았지만 풀만 무성했다. 얻은 것 없이 오랜 시간 찬바람 맞은 스트레스는 감기로 왔다.

꼭 먹지 않아도, 사서 먹어도 되는 먹거리를 내 손으로 해야 마음이 편한 몇 가지가 있다. 가을 시래기 말리기가 그중 하나고 청국장과 된장 담그기 이후 냉이 캐기다. 쑥도 지나치지 못한다. 오랜 습관은 계절마다 찾아와 숙제 같은 몸살을 준다.

봄빛이 활짝 열리는 동안 지난해 심어놓은 고사리도 싹이 튼실하게 올라왔다. 농막 그늘을 만들어 주던 벚나무 꽃은 순간 피고 꽃잎을 내렸다. 아쉬움에 떨어진 꽃잎을 따라 걷다 보니 냉이꽃들이 싸라기눈처럼 피어 벚꽃 잎을 이고 있다. 한 무더기 꽃 발견으로 또 다른 곳의 냉이꽃을 찾으며 밭둑을 걷는데 주변은 흰빛 꽃으로 일렁인다. 가장 가까운 곳에 간절히 원하던 것이 지천으로 있었는데 보지 못한 아쉬움이, 봄바람에 냉이꽃들이 흔들릴 때마다 같이 흔들렸다.

한편으로는 보지 못한 것이 참 다행이라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꽃 피기 전 보았다면 나물로 보고 모두 뽑았을 것이다. 노지에서 자라고 먹거리가 되는 식물은 쉽게 뽑히지만 꽃이 피면 생명으로 존재하고 소중하다. 냉이도 나와 꽃으로 만날 인연이었구나, 새로운 발견 하나로 발걸음이 가볍다. 냉이꽃과 풀꽃들 사이 제비꽃과 민들레꽃도 보인다. 꽃이 지고 씨앗이 밭고랑으로 날아와 터를 잡으면 나는 아름다웠던 봄날의 기억은 잊고 풀로 보고 뽑아버릴 여름이 두렵다.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말이 주는 의미의 차이로 고민에 빠질 때가 있다. 나는 말을 하는 직업이다 보니 듣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다. 또 먼저 말을 해야 하고, 빠르게 의사전달을 하는 편이다. 분명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 상대와는 공감이 되지 않아 말이 말로써 오해와 상처가 되는 세상살이에서 여전히 흔들리며 산다. 그래서 전달하고자 할 때 말보다 문자가 더 편하고 생각을 유연하게 한다. 글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아 기다려 주고, 잘못된 것은 수정해도 되며 좋지 않은 감정표현은 지우면 된다. 내 글도 발표하지 않으면 생각을 숨길 수 있다. 그런데도 공유하고 싶어 발표하는 글은 다시 말이 되어 움직인다.

보이는 그대로가 전부가 아닌 것을 최근에 수업한 책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다 같은 나무인 줄 알았어』그림책은 나무의 본성이 드러나지 않았을 때는 다 같은 나무로 본다. 그러나 계절의 변화로 꽃이 피거나 열매를 맺고 무성한 잎과 나뭇잎의 향기를 느끼면서 하나의 독립된 나무로 인식되는 과정을 소개하는 책이다. 벚나무는 꽃이 피어서 이름이 불리고, 느티나무는 그늘이 짙은 여름에 진가가 드러난다. 계수나무가 있다. 가을이면 잎에서 솜사탕향기가 난다고 한다.

기억을 떠올리면 진천 길상사 산언덕에서 나무를 처음 보았다. 여름이었다. 자드락길로 산을 올랐다. 달나라에서 토끼와 함께 사는 계수나무를 옮겨왔다는 지인의 너스레도 싫지 않은 오후였다. 그때는 발견하는 감동만 있었다. 가을이 되면 달콤한 향기에 취하고자 계수나무를 보러 갈 생각이다. 추억하는 시간을 떠올리는 것으로도 그림책 읽기는 만족이다.

조영의 수필가
조영의 수필가

살아가면서 가장 가까이 있어서 못 본 것이 냉이꽃만은 아닐 것이다. 스친 인연도 평범한 하루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소중하고 빛나는 존재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세상을 마음 열고 바라볼 일이다. 오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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