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아차! 하는 순간의 사고였다. 지난겨울 비바람에 찢긴 비닐하우스의 너덜너덜한 가장자리가 눈에 거슬렸다. A형 사다리를 타고 올라 가위로 비닐을 자르고, 타이로 단단히 묶어 깔끔하게 정리를 하고 있었다. 평온한 하루가 주는 일상을 보내고 있던 봄날 오후다.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를 때에 중심을 잃고 2미터 높이에서 곤두박질쳤다. 얼굴은 땅에 처박혀 이마에선 피가 줄줄 흐르고, 손목뼈는 이미 살 밖으로 튀어나와 덜렁덜렁 흔들렸다. 입 안 가득 고인 물컹한 피덩이를 뱉으니 앞니 세 개가 뿌리 채 쏙 빠져나왔다. 하늘이 노랗고 별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게 보였다. 119구급차에 실려 가는 긴박함 속에서, 생과 사의 경계선에서 두렵고 떨렸다.'모든 것이 한 순간이고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들로 가득한 응급외상센터는 그야말로 분초를 다투는 전쟁터였다. 수술실에 누워있는 나는 이리저리 뒹굴리는 정육점의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 양 손목을 수술하고 얼마 만에 깨어났는지 알 수 없다. 남편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살아있어 줘 고맙다며 따듯한 손을 잡아주었다. 마취가 깨어나면서부터 시작되는 통증과 무통 주사의 역겨움은 참을 수가 없었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야만 했다. 입원환자 옆에는 COVID 음성판정을 받은 지정 보호자 한 사람만 병실에 있어야 하는 규칙이 있다. 환자와 보호자는 병원 밖을 나갈 수도 없고 외부인 면회도 금지 되는 병실생활이 시작되었다.

살면서 이런저런 소소한 일로 병원에 들랑날랑했던 일은 가끔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세수, 양치, 배변 등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간병인의 도움이 절대 필요했다. 그렇게 만난 간병인 언니와 24시간 동고동락(同苦同樂)하게 되었다. 양손 장애가 된 나에게 엄마가 아기를 돌보듯 밥을 떠 먹여주는 일에서부터 샤워까지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함께 했다.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남편과 함께 파크 볼을 치고, 맛난 음식을 만드는, 당연하게 여기던 일상이 결코 당연 일이 아닌 것이 되었다. 잃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되는 우둔함을 어찌하랴. 이미 놓쳐버린 안타까운 후회는 소용없다. 그래서 있을 때 잘하란 말이 꼭 맞는 말인 것이다.

손목을 수술한지 2주일이 지난 후, 또 다시 세 번째 수술을 해야만 했다.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눈알을 둘러싸고 있는 뼈 한 쪽이 깨어졌다는 것이다. 코 내시경을 통해 코 속으로 밀려들어 간 눈알을 다시 제 자리를 잡아주는 이비인후과 수술이다. 코가 막혀 입으로 숨을 쉬니 혓바닥이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듯 했다. 가재수건에 물을 적셔 입에 물고 잠을 청하는 힘겨운 밤을 지냈다. 코로 숨을?쉰다는?것이 얼마나 큰 감사인지,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 그제야 알게 되었다. 굶어봐야?배고픔을 알고, 목마름에?지쳐봐야 물이 꿀 송이처럼 단 생명수인 것을 안다. 건강이?얼마나큰?재산인지, 소소한 일상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뒤늦게 깨닫는 어리석은 인생이다.

이경영 수필가
이경영 수필가

괴롭고 힘든 잔인한 4월을 보냈다. 퇴원 후 다시 바라 본 하늘은 햇살이 축복처럼 쏟아졌다. 만약에 사고가 났던 그 순간 뒤로 넘어졌더라면 나는 지금 저 하늘을 만날 수 있었을까? 비록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생각하면 감사의 조건이 넘쳐난다. 머리 다치지 않은 것, 허리나 척추, 고관절 다치지 않은 것, 눈동자를 안전하게 지켜준 것들이 얼마나 큰 기적인가. 그래서 감사하고, 그러니까 감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感謝)했다. 곁에서 함께 해 준 평생 동역자 내편이 있어 고맙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어 든든하다. 조금 더 연장 된 삶의 시간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남은 생의 여백을 감사와 사랑으로 채워 나가야겠다. 오늘따라 유난히 햇살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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