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이 년여 만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건강검진은 늘 수동적이어서 미루고 그냥 넘어가고만 싶다. 그 일로 오전 시간이 다 가는 것이 싫고 피를 뽑고 마시기 힘든 하얀 물약을 먹어야 하고 가슴이 쿡쿡 찔리는 것도 마뜩치 않다. 다 아는 것을 잘못 관리했다고 책망 받는 듯한 일도 기분 좋을 리 없다. 내가 시원찮고 소홀했지만 왜 매번 유쾌하지 않은 얘기를 남에게 들어야 하는가. 내 대신 고통을 받아 줄 이들도 아닌데….

삐딱한 마음이다. 건강하게 살도록 국가가 도와준다는데 무엇이 그리 불만인가? 올해는 거의 아무 일이 없는 듯싶더니 마지막 순간에 삐걱거렸다. 지난 번 까지 그럭저럭 넘어간 혈압이 문제다. 수동으로 다시 한 번 재잔다. 꽤 긴 기다림 끝에 다시 잰 혈압이 152에 얼마였다. 두 주 지나 편리한 때에 다시 오라며 전문의를 만나고 가란다. 상식적인 이야기를 친절하게 들었다. 지금 상태로는 약을 먹기 시작해야 하는데 한번 시작하면 혈압 약은 평생 간단다. 그러니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고 한 번 더 보자고 했다. 꾸준한 운동과 식이요법을 조언해 준다.

중병에 걸린 환자가 된 느낌이다. 평생 약 먹을 걸 생각하니 아득하다. 그 귀찮은 일을 어찌해야 하는가. 집으로 오는 길에 혈압측정기를 샀다. 아침저녁으로 재보라고 했으니 어쩌겠는가. 아내와 자녀들에게 혈압이 높다는 걸 주절주절 이야기했다.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그들도 들어주는 수밖에 없다. 혈압을 측정하니 병원에서와 큰 차이가 없다.

안내서에 맵고 짠 음식이나 국을 주의하라는 문구가 있어 은연중에 그런 것들을 피한다. 전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많은 몸의 감각들이 연관되어 느껴진다. 머리가 가끔 흐릿하고 무거웠는데 혈압 때문이었구나. 몸이 따끔따끔하다고 느낀 게 그런 것이었네. 눈이 잠시 흐릿하고 어지럽다고 느낀 게 다 이유가 있었구나. 혈압에 대해 알기 전까지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많은 것들이 자각이 되니 점점 더 환자가 되는 것 같다.

병은 자랑을 하랬다고 기회가 되는 대로 혈압이 높다는 얘기를 한다. 며칠 되지 않았는데 가는 곳마다 했다. 반응도 여러 가지여서 조심을 해야 한다는 것에서부터 혈압은 약만 먹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약값이 싸고 크게 불편하지도 않단다. 어떤 이는 인력시장에서 혈압이 높으면 쓰지 않는다고 했다. 들은 이야기를 종합 재구성해서 가까운 이들에게 나를 편히 모시라고 전해야겠다. 힘든 일은 하지 못하고, 충격 받는 일도 피해야 한다고….

그동안 등한시했던 운동을 하려 생각하니 쉽지 않다. 산책은 큰 효과가 있을까 싶고 줄넘기나 체조는 재미없어 며칠 하다 그만 둘 게 뻔하다. 그렇다고 십여 년 전에 그만 둔 탁구를 다시 할 수도 없다. 난감하다. 가까운 장구 봉이나 부지런히 오르내릴까? 이제라도 무언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걸 찾고 싶다.

십여 년 전에는 당뇨가 찾아와 인사를 하고 갔다. 혈압까지 와서 안부를 물으니 그들이 내게 접근하려는 게 분명하다. 그들은 끈질기기가 쇠심줄 같을 테니, 경고임에 분명하다. 내 언저리에서 기웃거리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다시 나타나 노년에 친구하자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아주 멀리하거나 떠나 살 수 없으니 어쩌면 좋은가? 내게 그들이 가할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음이 염려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하는 일을 줄여볼까 하다가 무슨 일들을 그토록 열심히 하는가 따져보니 실상 하는 일이 별로 없다. 효과적으로 일을 하는 이들은 소리 없이 많은 일들을 하는데 나는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다. 한두 가지 하는 일들도 남들이 보면 일도 아닌 것들이다. 그 일들은 익숙해서 내가 즐기듯 하는 것들이니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어떻게든 내게 숙제처럼 주어진 식이요법과 적당한 운동을 지속하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가리는 것 많고 적게 먹는 것이 내 식생활의 특징인데 익숙한 것들을 줄여야 하니 수월치 않을 게고, 오래 할 수 있는 적당한 운동을 찾기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앞날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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