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정재욱·정마리추씨 부부, 필리핀서 만나 결혼·입양·출산
가족들 하루 쌀 소비량만 6㎏… "매달 생일잔치… 행복도 10배"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사는 정재욱·정마리추씨 부부와 11남매 가족사진. /정재욱씨 제공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에 사는 정재욱·정마리추씨 부부와 11남매 가족사진. /정재욱씨 제공

[중부매일 이재규 기자] "하늘이 내려준 소중한 보물"

11일 오전 5시 30분, 남들보다 빠른 출근에 나서는 정재욱(55)씨는 집을 나서기 전 꼭 하는 일이 있다. 하늘에서 내려준 보물 11남매의 잠든 모습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일이다.

"출근하기 전 뒤돌아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뿌듯하지 않을 수 없어요. 우리 11남매와 아내는 하늘에서 내려준 소중한 보물입니다."

재욱씨 가족은 저출산시대에 보기 드문 애국자 집안이다. 아내 정마리추(40·여)씨와 은선(17·여), 영호(16), 혜선(15·여), 민호(14), 진호(12), 선호(11), 미호(9·여), 청호(7·여), 은호(5), 진희(4·여), 막내 철호(3·여)까지 총 13명이다.

청주시 흥덕구에 사는 정재욱·정마리추씨 부부와 11남매 가족사진. /정재욱씨 제공
청주시 흥덕구에 사는 정재욱·정마리추씨 부부와 11남매 가족사진. /정재욱씨 제공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과 입양, 그리고 출산까지 11남매를 이루는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다.

부부의 만남은 필리핀에서 시작됐다. 재욱씨는 여행 차 마닐라에서 친구의 소개로 마리추씨를 만났다. 마리추씨는 이미 자신이 낳은 은선·영호·혜선을 키우고 있었지만 둘의 사랑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내와 결혼을 결심하는 순간 아이들은 이미 제 자식이었습니다. 입양을 해서 법적으로 아버지가 됐고, 우리집의 기둥으로 듬직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결혼 후 두 부부는 현지에서 로컬 식당을 8년간 운영, 4명의 자녀(민호·진호·선호·미호)를 낳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귀국 계획하게 됐다.

"아이들이 많아지고, 교육문제도 있고 하다 보니 한국으로 다시 들어오게 됐어요. 처음에는 아이들이 적응하느라 꽤나 고생했습니다."

유난히도 추웠던 2017년 겨울, 재욱씨 가족은 고향 충주에 터를 잡았다. 빠듯한 가정형편에 경제적 어려움도 있었다. 23평 아파트에서 9명이 등을 마주대고 지냈고, 아파트 월세가 밀리면서 퇴거명령을 받기도 했다. 그 사이 여덟째 청호가 태어났다.

다행히 LH전세임대가 가능했던 청주시에 보금자리가 다시 마련됐고, 재욱씨 가정은 이듬해 부터 청주에서 생활하게 됐다. 청주로 온 이후 2019년 은호, 2020년 진희, 2021년 철호가 태어나면서 11남매가 완성됐다.

"청주로 이사를 마치니 제 손에 달랑 2만원이 남았어요.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까, 다음날 무작정 인력사무소로 나갔죠."

재욱씨는 그날로부터 200일이 넘도록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오전엔 공사판에서 잡부로, 저녁엔 대리를 뛰었다. 일당은 10만원 남짓. 일을 마치면 7천원으로 콩나물과 두부를 사 끼니를 때웠다.

청주시 흥덕구에 사는 정재욱·정마리추씨 부부와 11남매 가족사진. /정재욱씨 제공
청주시 흥덕구에 사는 정재욱·정마리추씨 부부와 11남매 가족사진. /정재욱씨 제공

"식구가 많다보니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경제적으로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하지만 더 큰 사랑으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재욱씨 가족의 식비는 사람들이 상상을 초월한다. 하루에 쓰는 쌀만 6㎏다. 아이들의 최애 메뉴인 닭볶음탕을 하려면 닭을 7마리 이상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닭다리가 1인당 하나씩 돌아간다. 하루 소비되는 밑반찬은 4인 가족의 일주일치가 넘는다. 11남매를 키우다보니 매달 생일상도 차려야 한다.

"지인들이 매월 생일상을 어떻게 차리냐고 걱정해주시는데, 그건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11번 생일을 하면 11번의 행복이 찾아옵니다. 남들보다 10배는 행복한거죠."

재욱씨 가족은 현재 기초생활수급 대상이다. 부양 가족이 계속해서 늘어나다보니 자연스레 생긴 결과다. 재욱씨가 공사장 전기 포설작업을 하며 생활비를 벌고 있지만, 식비를 대기에도 부족하다.

유일한 대안은 아내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지만, 귀화시험을 통과하지 못해 이마져도 여의치 않다

"아내가 아직 귀화를 못해 결혼 비자만 있어요. 그러다보니 학교나 기관에서 필요한 서류를 때는 일도 다 제가 해야 합니다. 귀화 시험이 너무 어려워요. 제도를 개선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지난 5일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청주 어린이큰잔치' 행사에서 최다참석 가족으로 선정된 정재욱씨 가족. /신동빈
지난 5일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청주 어린이큰잔치' 행사에서 최다참석 가족으로 선정된 정재욱씨 가족. /신동빈

마지막으로 재욱씨는 아이를 낳지 않는 신혼부부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처음부터 모든 조건을 갖추고 시작하면 태풍이 불 때 모두 엎어져 다시 일어나기 힘듭니다. 숟가락 두 개부터 시작해서 아이를 한 명, 두 명 낳으면 행복은 배가 됩니다. 가족이 함께 하나하나 쌓아가는 행복을 많은 신혼부부들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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