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영희 수필가

가부좌를 틀고 목욕하는 부처를 보았는가. 혹여 부처님 오신 날 목욕시키던 아기 부처를 떠 올릴지 모른다. 법 없이도 살 인자한 사람을 부처 가운데 토막이라고 하는데, 온몸이 줄어들어 라오스에서 본 부처같이 왜소하고 볼품없는 그녀를 보살도 아닌 부처라니… .

누군가는 말하리라. 인류를 구원할 위대한 뜻을 세우고 고행으로 중생을 구제하신 부처에 보잘것없는 구순 노인을 비견하다니 무엄하다고.

궤변이랄 수도 있는 이런 말들이 거침없이 나오는 것은 거의 1세기나 되는 그분 역사가 그만큼 지난했고 위대했다는 이야기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던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서 입 하나 덜기 위해 열여섯에 생면부지 총각한테 출가했다. 가진 것 없이 말만 종갓집인 층층시하 대가족에 발을 들여놓았는데, 귀머거리 삼 년 벙어리 삼 년 해도 그 나이에 할 줄 아는 게 얼마나 있으랴. 고추보다 매운 시집살이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더군다나 시모가 돌아가시고 계모가 아들을 낳자, 그 시집살이는 더 매워졌다. 손을 호호 불며 개울에서 해온 빨래를 진눈깨비 오는 마당에 패대기치고, 제사를 알려 주지도 않고 준비하지 않는다며 억지를 쓰는 게 다반사였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여자들은 경제적 능력이 없고 출가외인이라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던 시대다. 쫓겨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위안 삼았다.

그것도 겨울 볕뉘같이 잠시 드는 둥 하더니 6.25가 발발했다. 이제 정이 붙은 지아비를 전선으로 보내고 피난민한테 떡을 팔아 대가족을 부양했다고 한다. 포탄이 떨어지는 아비규환 속에서도 남정네들이 희롱하면 업은 젖먹이를 꼬집어 울려서 정조를 지켰다. 그 지혜를 어디에 비기랴. 어머니는 겪은 것을 다 얘기하면 장편 소설 몇 권은 될 것이라 하셨다.

그 고통을 어찌 견디셨나 물으면 그때는 다 그랬다고 덤덤하게 말씀하신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노구를 조심스레 밀어 드리다 보면 점점 야위어가는 노쇠함이 안타깝다. 젊어선 우리 등을 늘 아플 만치 밀어주셨는데 손이 닿지 않는 쪽을 가리켜야 인식하는 것 같다. 인생사 생로병사를 거역할 수 없음이 서글프다. 10여 년 전만 해도 어머니 이마는 잔주름만 보였는데 이제는 밭고랑인 듯 골이 깊고 온몸이 추수를 끝낸 가을 들판의 옥수수 껍질 같다. 험하고 순탄치 않은 세월 거칠고 힘들게 살아온 인생 흔적이라 자식으로서 보는 것도 힘들다.

그나마 주름 없는 곳이 등이다.

등을 밀며 등은 여전해서 미인대회 나가도 되겠다고 농을 하면 한참 후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신다.

사람들은 친정어머니 목욕시키려 왕복 다섯 시간이나 걸리는 길을 자주 다녀간다고 효녀라 한다.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바쁠 때는 새삼스레 버거울 때가 있다. 우리 집으로 오시라 하면 내가 아들 없는 늙은이도 아니고 왜 딸네 집에 사느냐고 그 연세다운 고정관념을 들어내신다. 그런 꼿꼿한 주관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지 싶어서 서운함을 살짝 감춘다. 아직은 사리 판단이 분명하고 며느리한테 자존심을 잃고 싶지 않아 딸과의 목욕을 고집하시는 어머니를 이해하면서도 측은하다. 오십 대에 지아비를 잃고 팔 남매 입에 밥 넣어주려 혼신의 힘으로 살아냈으니. 사람은 태어날 때 저마다의 짐을 짊어지고 태어난다며, 그 힘든 세월 아슴푸레 흘려보내고 아흔셋에도 건강을 유지하시는 어머니가 고맙다.

이영희 수필가
이영희 수필가

"삶보다 숭고한 종교도, 가족보다 신성한 경전도 알지 못한다."라고 말한 최인호 작가의 말씀을 더 공감하게 되는 가정의 달이다. 우리 형제들이 우애 있게 만날 수 있게 하고 아직도 주변 청소하며 산책하시는 어머니는 부처에 버금가신다.

주름진 부처라고 아직도 어리광으로 포장하는 철 덜 든 딸에게 정정한 어머니는 그 이상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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