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유종열 전 음성교육장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날은 세종대왕 탄신일로 '이 세상의 모든 스승이 세종대왕처럼 존경받는 시대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비롯됐다.

오늘날 무너진 교권으로 선생님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학생이 교사에게 욕설과 폭행을 하고, 학부모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교실에 찾아가?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교사를 모욕하는 사건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스승과 제자의 사제지도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존경받아야 할 스승의 자리는 교실 어디에도 없으며 교육현장에는 소신껏 학생지도를 하기가 어렵다는 선생님들의 한숨 소리만 요란하다.

'스승은 운명이다' 알베르 카뮈의 말이다. 한 인간은 어떤 스승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의 운명이 결정지어진다는 말이다. 요즘 같이 삭막한 세상에 훌륭한 스승 한 분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 각박한 세태에 훌륭한 스승이 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옛 고향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다 보면 가슴에 크게 자리 잡은 것은 철없던 시절 언제나 열정이 넘치고 다정하신 은사님의 모습이다. 참으로 가난했던 시절, 선생님은 아무런 대가 없이 오로지 타는 정열로 호롱불을 밝혀 밤을 지새우고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며 꿈을 키워주셨다. 모두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세상에 무엇을 바라고 그랬겠는가.

교단을 떠난 지 십여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선생님!"하고 부르면 가슴 밑바닥을 훑어 내리는 아픔 같은 게 있다. 제자들에 대한 스승으로서의 부족했던 부분들이 나를 아프게 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스승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내 제자들에게선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나는 학창시절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난에 시달린 탓에 실의와 방황으로 얼룩진 학창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대학진학은 감히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대학원서 마감 하루 전날 방과 후에 담임선생님이 나를 부르셨다. 선생님은 어떤 영문인지 텅 빈 교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한참을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오랜 침묵이 흘렀다. 알고 보니 선생님은 흐르는 눈물을 억지로 참고 계셨던 것이었다.

순간 나는 머리를 방망이로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선생님의 저 눈물은 무슨 의미일까. 분명 나에 대한 안타까운 연민으로 인해 울고 계신 것이 분명하였다. 이내 선생님은 눈물을 애써 감추시며 말씀하셨다.

"너를 위해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구나! 너의 형편으로는 대학진학이 힘들겠지만 어떡해서든 대학은 가야만 한다. 학비가 저렴한 교육대학 원서를 써줄 테니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이다음에 꼭 훌륭한 교사가 되어 가난한 아이들의 등불이 되어라."

순간 나의 자그마한 가슴은 터질 듯 아파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눈물을 쏟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선생님의 눈물은 흡사 그리스도의 계시 같은 그 무엇을 어린 가슴에 심어 주셨다.

평생 잊지 못할 스승의 은혜를 그리움으로 안고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아직도 있다는 것은 선생님의 가르침이 세월이 흘러도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선생님의 진심어린 말 한마디가 학생의 삶의 물줄기를 바꾸게 하는 '위대한 사건'이 될 수도 있다.

교육은 인간을 만드는 중요한 성업이다. 그래서 모두가 무너지고 내려앉아도 교육이 무너지면 끝장이다. 기업이 일시 가라앉고 가정경제가 어려워도 교육이 살아 있으면 희망이 있다. 왜냐하면 교육은 국가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교사가 힘을 잃으면 아이들의 눈빛이 흐려지고 아이들의 눈빛이 흐려지면 나라의 장래가 어두울 것은 자명하다. 교사가 존경과 신뢰를 잃으면 교사의 말이 아이들에게 먹히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 교육이 어렵다.

선생님은 돈이 많아서 될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권력이 있어서 될 수 있는 자리는 더욱 아니다. 오직 아이들로부터 존경이라는 이슬을 먹고 살아가는 자리이기에 한 순간이라도 소명의식을 버리고는 그 위치를 가눌 수 없고 조금도 흐트러짐이 있어서는 안 되는 참으로 어렵고 고달픈 직업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선생님들에 대한 존경심이 희미해져가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더라도 선생님은 경험이 풍부한 지도자로서 인생이라는 험난한 여정에서 아이들을 안전하고 이로운 곳으로 안내해 줄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이어야 한다.

유종열 전 음성교육장
유종열 전 음성교육장

훌륭한 스승은 그 자체가 촛불이다. 제자들의 두 눈이 밝음에 트일 때까지, 어둠이 다할 때까지, 스스로를 다하며 타오르는 하나의 촛불이다.

교권은 무너지고 스승의 위상은 더욱 추락하고 참으로 안타까운 시대다. 어른이 없는 시대, 참 스승이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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