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꽃을 항아리에 꽂는다. 인생을 설계하듯 향이 좋은 백합을 중심으로, 카네이션과 장미는 왼쪽에, 보랏빛 꽃도라지는 오른쪽으로, 안개와 국화를 사이사이에 배치한다.

꽃에 비하여 항아리가 작은 듯하다. 도예공방에서 내가 만든 백자항아리다. 흙을 다지고 밀어서 아래부터 차례차례 감아올려 만들었는데 삐뚤다. 약간 오른쪽으로 더 부풀어있다. 그래선지 꽃도 부푼 쪽으로 더 치중되어 있다.

안개꽃이 한아름이다. 그래도 안개꽃은 주연이기보다 조연이다. 다른 꽃들을 받쳐주는 배경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개꽃은 변두리 삶을 살아온 지난날을 보는 듯하다.

결혼하고 생긴 아이들은 계속 유산되었다. 임신 칠 개월에 인연이 되지 못한 아일 떠나보내고 퇴원을 했는데 젖이 불어있다. 먹을 아기는 화장터로 가고 없는데, 젖멍울의 통증을 약으로 버티면서 울음을 삼켜야 했다.

십 년 만에 쌍둥이를 낳았을 때, 난 그래서 두 배로 젖이 많을 줄 알았다. 그러나 한 아이 먹을 양도 나오지 않았다. 몸무게가 조금 더 크게 태어난 아들에게 간신히 젖을 먹이는데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몸 안에 세포 세포가 다 살아나는 듯 아이와 나를 단단히 동여맸다.

임신했다가 유산되기를 반복하던 지난날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유선이 발달했다가 멈추고, 발달했다가 멈추고를 반복하는 것이 건강에는 안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어느 날 가슴이 보조개처럼 약간 들어가 혹시나 하고 병원엘 갔더니 암이란다.

유방암이라고 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가슴에 머문다. 어떤 이는 가슴을 절제해서 얼마나 속상하냐고 한다. 가슴을 보전 한 사람은 무조건 방사선치료를 받아서 날마다 치료받으러 다닌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나도 전에는 그리 알고 있었다. 가슴에 먼저 시선이 갔으니까.

무게로 인체를 보면 유방은 100그램이다. 그중에서도 아주 일부를 잘라냈는데 수술 자국 때문인지 우울증이 왔다.

칼자국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너지고 우울하다. 병원은 늘 북적인다. 한 시간을 넘게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날이다. 어떤 분이 원피스를 입고 왔다. 문진할 때 원피스를 벗으려고 그러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가슴이 납작하다. 축이 무너진 빈 가슴에 시선이 머물다 이내 거둔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원피스 입은 여성이 말을 한다. 양쪽 가슴을 다 잘라냈는데, 5년 지나 다 나은 후에 복원 수술을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병원에 있을 때 복원 수술한 환자들 다 후회한다고 했단다. 그러자 눈 감고 있던 여성이 자기도 후회한단다. 수술하여 다 잘라낸 가슴에 살이 없다 보니 날마다 살을 늘리는 주사를 맞는데 너무나 아프단다. 그렇게 고생하여 복원 수술을 했어도 원래 가슴보다 훨씬 작고 또 수술 자국도 다 보인다고.

그날 이후 지금의 내 모습을 사랑하자고 다짐했다. 얼마나 소중한 현재의 모습인가. 요즘은 여성의 가슴을 성적 대상보다 신체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어머니는 자식을 낳아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키운다. 여자이기보다는 모성을 앞세운다. 그런 어머니들이 아기에게 젖을 물리어 살려내는 생명의 젖줄, 생명의 근원이 가슴이다. 완경되어 늙고 쪼그라든 가슴도 그래서 더 성스러운 것이다.

암이란 혹 때문에 재발할까, 호르몬 암인 갑상샘이나 자궁에도 영향이 미칠까 전전긍긍하며 시간을 보낸다. 완경으로 그나마 나오지 않는 호르몬마저 차단하기 위해 매일 약을 먹는다. 젊은 환자들은 생리를 멈추게 하는 주사를 한 달에 한 번씩 맞는다고 하니, 여자를 여자이지 않게 하는 거 같아 슬픈 암이다. 여자의 가슴에 대한 찬미를 이제 그만 하라고 하고 싶다. 크고 둥글고 탄력 있는 아름다움을 더는 강요하지 말았으면 한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안개꽃처럼 조연이 아니라 항아리 가운데에 꽂힌 백합처럼 내 인생에 주연은 내 자신이다. 이다음 도예공방에서 다시 항아리를 빚는다면 더 크고 소담스럽게 빚으리라. 비대칭여도 상관없다. 짝짝이고 좀 들어가면 어떠리.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는데…….

꽃이 한쪽으로 치우쳤어도 아름답다. 가슴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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