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새벽에 눈 뜨면 창밖에 소근 대는 새들의 지저귐이 다정하다.

장갑 낀 손에 호미 들고 잔디밭에 잡풀을 뽑으며 그들의 대열에 끼여 사랑 놀음에 취한다.

백장미와 흑 장미꽃이 우아하다. 사랑초가 방글거리고, 능소화와 다래 넝쿨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겨울 내내 방안에서 기쁨을 선사했던 화분들이 앞마당 곳곳에 둥지를 틀고 한껏 멋을 부리고 있다.

유난스러울 만큼 어머니와 난 꽃을 좋아 했다. 뜨락에 나란히 줄을 세우고 4계절 사랑을 나누며 친구처럼 지낸다. 어떤 날은 해묵은 고슴도치 선인장이 흉측한 모습으로 기다란 꽃대를 키워 놀라게 하는 날도 있다. 꽃대는 징그러워도 우아하게 하얀 꽃을 소복하게 피우는 날은 이웃들을 불러 자랑을 하게 했다. 송충이 닮은 선인장이 주홍색 꽃을 화분가득 피워 황홀경에 빠뜨리기도 한다. 연분홍 계발 선인장이 주렁주렁 매달리면 그 성취감을 무어라 표현 할 수 없이 환희에 넘쳤다.

매장에서 온종일 허둥거리고 마무리를 하고 축 늘어져 집으로 오면 여기저기 할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과 남편을 위하여 저녁 만찬을 준비하는 동안 앞마당 가득 노오란 천사의 나팔꽃과 분꽃 향은 피로를 십리 밖으로 쫓아 주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뒷동산의 아카시 꽃 향과 앞마당의 백합이 가족들을 반겨 주었다. 터 너른 집에 살면서 소소한 꽃을 가꾸는 재미로 세월을 엮었다. 텃밭에 토마토며 고추, 가지 쌈채소를 심었다. 수분이 많은 땅엔 토란을 심고 오이를 심어 넝쿨이 잘 올라가게 해주면 주렁주렁 꽃이 피며 매달리는 오이가 어찌 그리 예쁘든지, 토마토가 빠알갛게 익어가고 고구마와 감자농사를 해마다 지었다. 어디 그 뿐이던가. 참깨와 들깨 콩까지 자급자족을 했다.

시장에 가서 체소를 사는 것이 아니고 텃밭에서 먹거리를 농사짓는 재미는 해본 사람만이 느끼는 행복이다. 자고 깨면 보는 식물들은 미운 놈이 하나도 없다. 보고 또 봐도 신선하다. 이웃이나 숍의 고객과 직원 까지 나누워 먹으며 이야기 꺼리가 풍성 했다.

세월이 흐르고 지나간 추억을 떠 올리니 참으로 열심히 살았고 바빴지만 행복 했었다. 지금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몸이 하자는 대로 자고 싶으면 자며 취미 생활로 시간을 보낸다.

가장은 술이 벗이었다. 술은 사람을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로 만들었다. 가족을 향해 걸러지지 않은 표현으로 상처를 주곤 했다. 그런 날이면 아이들과 주섬주섬 목욕 도구를 챙겨 수소 테라피를 즐기던 때 도 있었다.

남편은 술을 이기지 못하더니 몸이 망가져 순진한 아기가 되었다. 활력 넘쳐 가족을 괴롭힐 때는 미웠으나 부부란 묘한 것이 미운 정 고운정이 들으면 측은지심이 생기는 건가 보다.

남편은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의자에 몸을 기대고 물주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삼남매는 짝을 만나 새 둥지로 떠나버렸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내가 들인 정성에 보답하는 반려 식물들이 있어 행복하다.

제비 콩을 햇볕가리개로 창 앞에 심었더니 보라색 꽃이 피었다. 대문 앞에 4포기의 해바라기를 문지기로 삼았더니 하회탈 같은 얼굴로 미소를 짓는다. 봄부터 심어서 순을 따주며 키우는 국화가 싱그럽다. 앉은뱅이 금잔화는 여름부터 서리가 내릴 때까지 황금색 꽃을 피운다. 꽃을 좋아하는 미원의 유 선생, 신성동의 박 선배님이 주신 다래 넝쿨이 그늘 막을 만들어 주니 우리 집의 운치는 아름답기만 하다.

이른 봄 50여송이의 자주빛 꽃을 피운 목단에 거름을 준다. 내년에 더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로즈마리, 라벤더, 스피아민트. 애플민드, 오데코롱, 어성초,는 화장품이나, 비누를 만들 때 쓰는 식물들이다. 구석구석에 심어두고 잎을 따서 냄새를 맡는다. 하나하나 따서 알콜에 재워 두었다가 모기퇴치제도 만들고 스킨을 만들어 이웃들과 나누워 쓴다.

보라색의 호접란이 곱다. 방안으로 초대를 했더니 방안이 환하다.

검은 등 뻐꾸기가 네 박자로 노래를 부르니 남편은 휘파람으로 장단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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