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이른 아침이면 변함없이 바같 노인분은 대문을 열어 제치고 빈 리어카를 끌고 시내거리를 향해 하루를 열어 오후 늦게야 빈박스와 폐휴지를 가득 싣고 집으로 돌아오신다. 안주인 역시 동네근처를 돌아 다니시며 빈박스를 모아 열심히 도우신다. 그래 어느 날은 안주인분에게 조심스럽게 여쭈어 본적이 있다. '바같 분 어르신네가 힘드실텐데 그만 하시라고 하세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아이구, 저분은 내말 안들어요, 타지에서 출가한 아들과 딸이 살고 있는데 우리 집에 오면 '아버지, 제발 그러지 마세요, 저희들이 용돈 보내드릴께요'라고 신신당부를 해도 '저 양반은 성격이 쉬는 것을 아주 싫어해요 그래서 무엇이든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자식들에게 신세를 지지 않으려고 저렇게 하시니 저도 하는 수 없이 함께 하잖아요, 그래도 무엇인가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 같아요' 라고 말씀하신다. 듣고 있던 저 자신이 부끄러워 진다. 참으로 지금은 쉬어야 할 칠십대 중반인 것 같은 데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시는 노부부를 뵈올 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뿐만 아니라 안주인분은 우리 동네 주변에도 아침마다 깨끗하게 청소도 하신다. 더 더욱 아름다운 것은 항상 이웃 분들을 만나면 먼저인사하시고 늘 웃는 모습이시다. 겸손함과 배려가 스며져 있는 분이시다. 이름없는 천사요, 우리네 삶의 모델이 아닐 수 없다.

그런가하면 오늘도 또 그분을 만났다. 처음 만난 분은 아니지만 칠십대 초반의 남자 어르신이다. 우리동네에 같이 살고 있기에 만나면 서로 인사도 하고 시간이 있으면 길옆에서 서로가 살아온 삶의 뒷이야기를 나눌때도 있다. 때로는 동년대를 살아온 터라 쉽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여 주면 그분은 어린아이처럼 신이나서 젊었을 때 속칭 잘 나갔을 시절을 회상하며 아쉬움을 남기곤 한다. 아마 공업계통의 사업을 하셨던 분 같다. 그래도 그 덕분에 길가에 3층 건물을 마련했다며 자랑스러워 하기도 하신다. 그런데 그분은 변함없이 자기 투산차에 빈박스를 가득실어 와서는 빈박스와 폐휴지를 모아 생활하시는 노부부의 집에 가져다 놓으신다. 물론 동네분들도 자기집에서 나온 빈박스나 신문, 책등을 가져다 주는 일은 종종있지만 그분처럼 길가의 빈박스를 주어 차에 싣고 와서 그 노부부집에 가져다 주는 일은 없다. 그래, 너무 고마워서 '사장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제가 부끄럽습니다. 자주 이런 모습을 뵈올때마다 감동받습니다. 정말 천사이십니다.' 라고 말씀드리면 '선생님, 별 말씀 다하십니다. 같은 동네, 이웃 좋다는 것이 뭐 있습니까? 서로 작은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서로 나누는 것이지요, 차를 타고 가다가 길가에 빈박스가 눈에 띄면 노부부가 생각나서 그냥 갈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차를 세우고 누가 보든 말든 뒷자리와 드렁크에 주어 담아 오는 겁니다. 그래야 제가 마음이 편하니까요' 라고 말씀하신다. 옆에서 듣고 있는 나는 더 이상 몸둘 바를 몰라 '그럼, 사장님 수고하셔요' 하며 자리를 떠나고 만다. 하지만 여전히 뒤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그렇다. 누구나 지나고 보면 인생의 총량제는 같다. 가는 길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흔히 성숙한 인격의 지표를 생각할 때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그중 하나가 자기중심성 탈피가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활은 반드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지식으로는 이웃사랑, 남을 위한 배려 그리고 겸손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따스한 마음을 담은 사랑의 손길은 그리 쉽지 않다. 다시금 생각해보면 이분들야말로 우리를 웃게 만드는 천사요, 고마우신 분들이다. 이런분들이 계시기에 힘들고 어렵지만 살맛나는 세상이 아닌가? 나아가 오늘 나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값진 삶인가?'를 무언으로 가르쳐 주신 분들이다. 다시한번 나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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