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자치단체에서 도로개설계획을 세우고 관련 토지주와 보상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행세한다는 문중의 임야를 가로지르게 되어 양측이 보상금액을 협의하는데, 수백 년을 잘 지내온 조상의 산소를 파헤치는 불경스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며 결사반대하는 쪽과 보상을 받아 다니기 편리한 곳으로 이전하자는 쪽의 의견 대립으로 문중 내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여러 차례의 협의에도 결론이 안 나자 민원을 수용하여 심의를 거쳐 도로계획선을 변경했다. 문중은 문제를 풀지 못하고 원점으로 돌아왔으나 그동안의 갈등 충격파로 촌락은 그대로인데 인걸은 서로 꼴도 보기 싫다며 마음과 몸과 거처까지도 삼지사방으로 흩어지니 존경받던 승지 집안은 풍비박산이다. 그 험악한 논쟁으로 얻은 건 무엇인가? 왜 그랬을까? 양보로 합의할 수가 없었나?

명당의 기운이 다했음일까? 종손과 지손 간의 갈등 폭발이었나? 외탁 손 중에 우성이 있었나? 그것도 아니면 문중원 간 빈부격차가 심했나? 득은 없고 잃는 꼴만 보았을 선령(先靈)은 문명한 세상의 후손들을 어떻게 보았을까? 참으로 대견하다고? 이제 이런 버릇은 버려도 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이렇게 파벌을 지어 논쟁하는 양상은 수십 백 천 년 전부터 지상의 곳곳에서 생겨났으나 가라앉거나 사라지기보다는 갈등의 줄기만 각양각색으로 무성하게 자라 각계각층으로 힘차게 뻗어나갔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일들은 지역을 벗어나 국가 간에도 분쟁을 서슴지 않게 되니 지구가 좁다고 외계로 이탈하려는 공상만화에서나 불 수 있던 별들의 실전도 머지않은 듯하다.

지금도 그칠 줄 모르는 이런 일들은 다 누구를 위한 악다구니였을까? 조상의 빛난 얼이라고 물려받아 대를 이어서 벌여온 한풀이였나? 그 틀을 못 벗어난 어깨동무 친구는 철들자 고향의 순진한 친구들을 자기 성장의 발판으로 이용하고서도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기만 하다. 이런 게 고향 친구와의 의리인가? 이런 물에서는 물결 따라 뒤집히는 일이 다반사요 여반장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나 자신 말고는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는 말이 딱 맞는다.

글 좀 읽었다고 아는 척하는 이들은 머릿속에 든 만큼 입에서는 게거품을 잘도 낸다. 자기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따지며 대들지만 그 태도와 행동거지에선 속일 수 없는 본성이 그대로 반사된다.

이런 근성은 그가 지구를 떠나도 근절되지 않는다. 길바닥에 버려도 주어가지 않는 자존심과 아집으로 두 주먹 불끈 쥐고 무릎 세워 고음 목청 끝까지 올려보지만 잘했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다. 선 공익보다 선 사익(先私後公)을 내세웠음이니 당연한 결과이리라.

이웃이나 문중 간에, 파벌이나 파당 간에, 지역이나 국가 간에, 주의와 이념 간에, 보수와 개혁 사이에, 심지어는 종교와 피부색, 언어와 관습, 직업과 직급 간에도 이런 습성이 내재해 있다가 심기가 뒤틀리면 표출되어 난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전향 차원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학·지·혈연이 통반장이나 친목회장 등의 선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과 다름아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에 활용할지 모르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과 명함을 주고받으며 하는 말도, 어느 대학에서 어느 교수의 전공을 받았으며, 고향과 본적은 어디이고, 성씨와 관향은 어디인지를 알아야 인사가 끝난다. 제발 좋은 일에 쓰이길.

이런 악습은 서양보단 동양에서, 그중에서도 우리 주변에서 성황을 이룬다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국가 차원의 정치 외에도 우리 생활의 곳곳에서 활용되고 있는 이런 패거리들의 이전투구는 결국엔 공멸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김전원 충북민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충북민실련 상임대표

상대를 제압하려고만 들지 말고, 상생의 길을 찾아 이해하고 용서하며 양보하며 배려하면 나쁜 마음 못 버린 자 박살 내려오던 청천의 날벼락도 감동하여 돌아간단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만, 나쁜 짓 한 자에겐 응징도 불사한단다. 시간이 없으면 대를 이어서라도 반드시 돌려준단다.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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