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실업계 고등학교에 근무했을 때의 일이다. 정규과목외 특별활동 시간에 실생활과 연관된 다양한 학습으로 학생들과 같이 체험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배움에 적극적인 나는 이것저것 관심분야의 강의를 골고루 들을 수 있어 일석이조(一石二鳥)였다. 실습실에서 케익 만들기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해, 할 수만 있다면 선생님들도 자격증에 도전해 보라 말씀 하셨다. 그 선생님도 학생들을 가르치며 공부하다보니 어느새 스무 개가 넘는 자격증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과제빵사, 바리스타. 플로리스트, 한식?양식 조리기능사, 칠보공예…. 한 단계 도약하는 일이 재미있고 성취하는 기쁨이 있었단다. 세 사람이 같이 길을 가면 그 중 반드시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는 말이 꼭 맞다. 나 역시 좀 더 업그레이드 된 삶을 위해 그녀를 따라 긍정의 샘물에 발을 담그기로 했다.

가정의학전공의인 사위에게 혹시라도 급한 일이 있을 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여 간호조무사 자격증에 도전했다. 정부지원 배움 카드로 교육비는 물론 식비와 교통비까지 주는 혜택을 십분 활용했다. 이론 740시간, 실습780시간, 간호대학 4년 과정 1,520시간 수업을 단기간에 마쳐야했다. 늦깎이 학생은 눈물로 씨를 뿌리며 하루 8시간씩 공부를 했다. 기왕 도전하는 김에 요양보호사, 병원코디네이터까지 한꺼번에 세 가지를 가져왔다. 자연의 섭리대로 지나감과 머무름이 만남의 복이 된 것이다.

요양병원에서 실습은 매일 아침 환자들의 혈압. 당뇨를 체크하고 살피며 기록하는 일이 우선이다. 할아버지 환자들은 중국 아저씨가, 할머니 환자는 중국 아주머니들이 간병을 하였다. 인자한 얼굴의 멋진 노신사 분은 눈을 마주치는 것 외에는 미동조차 없다. 가녀린 할머니 엉덩이는 욕창으로 뼈가 보였고 소독 할 때마다 아픔을 표현하는 흔들림만 있을 뿐이다. 남편이 퇴직한 후 두 달 만에 쓰러진 아내를 6년 째 간호하며 순애보를 써내려가는 선생님. 건장했던 군인 아저씨가 어느 순간 무너져 큰 덩치를 힘겹게 간병하는 가녀린 아내. 구구절절 기막힌 삶의 이야기는 저마다의 사연들로 가득하다. 그들의 슬픈 뒷모습을 보며 마음을 쓸어내려야만 했다.'구구팔팔이삼사(99 88 234).'구십 구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이삼일만 아프고, 자식들 얼굴 본 후 죽음을 맞이한다는 의미있는 말에 공감한다. 누구든 건강하고 행복한 황혼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환자가 되었다. 24시간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는 간병인과 병원 생활이 시작 되었다.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환자와 함께해야 하는 간병인의 하루 일과는 중노동이다. 제 때 밥을 먹거나 편하게 잠자는 것도 힘들지만 언제나 환자가 우선이다. 간호조무사 경력이 있는 성실한 그녀와의 만남 또한 내게 복이었다. 간병인 언니는 시간을 쪼개어 새벽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우유를 먹는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한 것이다. 매일 항생제주사를 맞다보니 변이 딱딱하게 굳어 밖으로 나오지 않아 괴로웠다. 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시원하게 배변을 해결해주는 착한 손을 가졌다. 아기가 자라며 하나 둘 알아가듯 그녀와 함께 날마다 조금씩 기적을 만들 수 있었다.

이경영 수필가
이경영 수필가

좋은 만남은 나침반이다. 인생이라는 넓은 정원에 예쁜 꽃이 필 수 있도록 서로를 세워주고 또 하나의 길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수많은 만남 중에 좋은 사람들이 전해 주는 에너지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복인가. 만남의 선물이 주는 긍정의 아이콘으로 인해 더 나은 삶이 펼쳐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덤으로 오는 축복이다. 오늘도 나는 두 손을 모은다. 나와 더불어 대대손손 만남의 복이 이어져 그들의 삶에 시온의 대로가 활짝 열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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