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한식 수필가

제주도에서 걸려온 전화를 책상을 치고 고함을 지르며 받았더니 아내가 놀랐던 모양이다. 그 전화를 끊지 않고 가져다주니 잘 했다고 연신 격려하며 기뻐했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모처럼 세 딸과 두 손녀가 제주도에 갔는데 그 사이에 막내가 본 시험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이때쯤이겠지 하고 있었는데 좋은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놓인다.

막내가 시험을 보기 시작한 건 몇 년 되었을 게다. 아침부터 초저녁까지 세 과목을 본다고 했다. 언젠가 본인도 답답한지 토요일에는 시험 대비 학원이 있는 대전으로 수업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 지난번에는 1교시 과목에 합격했다면서 이제 시험 보러 아침 일찍 가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했다. 6개월이 길기도 하지만 짧기도 했을 게다.

최근 들어 꽤 열심히 하는 것 같아 시험 후에 물었더니, 한 과목은 준비한 대로 보았는데 다른 과목은 새로운 경향으로 출제되어 방향을 잡다가 기본적인 걸 하나 놓쳤다면서 그 과목은 안 될 것 같단다. 다 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시험부담이 많이 줄었으니 실력 쌓는다고 생각하고 임하라고 하니 그 수밖에 다른 선택지가 없지 않느냐고 한다.

삶이 어쩌면 시험의 연속이 아닐까? 시험장에서 치는 분명한 시험뿐 아니라 나이 들며 누구나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들도 시험이 아니고 무엇이랴.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도록 많은 시험들을 거친다. 때로는 어려운 시험을 '인륜지 대사'라고 해 서로 돕고 격려해 통과한다. 예전 책이나 방송에서 접한 아프리카 몇 부족의 성인식이 기억난다. 온 동네의 관심 속에 혹독한 성인식을 치른 후 그들을 성인으로 받아들인다. 유·무형의 시험들을 거치며 단단해져 간다.

학교에서만 시험을 치르는 것은 아니다. 운전면허처럼 이 사회에서 필요한 자격을 얻기 위한 시험들도 많다. 이제는 특정한 자리에 합당한 자격증이 있는 이를 원하는 게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보다 나은 일자리를 위해 자원해 시험을 통과하는 시대다. 더욱이 불안한 이들은 꼭 필요해서보다, 소유하면 더 유리할 것 같은 여러 자격증을 취득하려 하니 시험이 이어지는 게 당연하다. 유능한 이들을 양산하는 무서운 경쟁시대에 살고 있는 게다.

시험을 치는 실제 목적은 무엇일까? 일정 이상의 능력을 지닌 이들을 선별해 자격을 주자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실력이 단단해지고 기술의 위계가 쉽게 드러난다. 내적으로는 시험 준비라는 인내의 과정을 거치며 정신적 성숙도 기대할 수 있을 게다. 정작 시험을 치러보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생각하던 것보다 대단치 않음을 확인하게 되어 겸손하게 하는 힘도 있는 듯하다.

나는 자동차 면허 시험을 여러 번 보았다. 그 평범한 것을 몇 번이나 도전해 취득했는지 모른다. '1종 보통'이면 되는 면허를 '원동기'부터 '2종 보통'을 거쳐 '1종 보통'까지 두루 통과하는 이상한 과정을 거쳤다. 그 중에 '1종 보통'은 원서가 한 장으로 부족해 다시 신체검사를 하고 사진을 붙였던 것 같다. 하다하다 안 돼서 결국 운전학원 속성 반에 등록하고 강사가 시험장에 따라와 그의 조언을 듣고서야 코스시험에 합격 했다. 장거리 주행은 더 심해서 가장 점수가 높은 두 곳의 점수를 잃고 딱 합격점에 걸쳐 통과했다. 지금도 운전은 자신 없고 내게 맞지 않는 것 같다.

최한식 수필가
최한식 수필가

언어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또 조금 더 향상시키고 싶어 그런 시험에 도전하고 싶은데 시험들이 컴퓨터 기반이라 용기를 못 내고 있다. 도구에의 접근이 두려워 멋진 열매를 포기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셈이다. 기계사용에 대한 두려움이 적다는 면에서 자녀들이 나를 닮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셋 모두 기계에 별다른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수많은 기계를 제 몸의 일부처럼 다루며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 다행스런 일이다. 끝없는 시험들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막내가 되길 기원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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