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사물이나 동식물이 사람처럼 영특하고도 신통스럽게 행동할 때 우리는 그를 영물靈物이라고 부른다. 그런 일들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오늘에 와서 확인할 수도 없지만, 그랬다는 구전설화로 전해지고 있으니 가시적인 터도 찾지 못한 채 재미로 듣고 그냥 믿어 보는 것이리라. 그래야 영물의 의미가 오래도록 이어지는 게 아닐까?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는다고 그 자신이 같은 부류가 되거나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니, 세상을 바른 마음으로 서로를 배려하면서 제발 사람답게 살라고 일깨워 준 어떤 현자賢者의 똑똑한 가르침이었으리라.

우리 주변에서는 아직도 삶의 의욕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이런 크고 작은 영물이 잊지 않을 만큼씩 출연하고 있다. 전통의 민속 신앙 탓일까? 어릴 적부터 들은 이야기 중 감명 깊은 것으로 속리산의 정이품송과 치악산의 까치가 그랬으며, 제주의 영등할매와 감포의 이견대 등이 그랬다.

새벽의 까치 소리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준다고 좋아하고 있으며, 저녁의 까마귀는 좋은 일을 몰고 온다며 자기 소원도 이루어질 거라고 믿는 것도 그렇다. 진돗개의 충직함과 은혜의 플란다스 개를 반려의 영물이라면 안 될까?

며칠 전 새벽에 뒷동산에 올라 둘레길을 걷던 날이다. 평지로 한 바퀴를 돌아 작은 언덕을 넘어 내려가는데, 내리막길 저만치 앞에서 까치 한 마리가 "깍깍 깍깍" 다급한 소리를 내며 톡톡 튀면서 빠르게 내려간다. 짝을 찾는 건가? 마치 강아지가 눈 덮인 길을 앞장서 안내하기라도 하듯 튀어간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여 발걸음을 재촉하여 계속 따라가니 하산길로 접어들어 계단을 톡톡 튀면서 내려가는 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 같다.

내가 다니는 길의 반대쪽 내리막길은 6차선 도로 옆의 버스정류장에서 100미터쯤 되는 거리인데, 꼬불꼬불하고 경사가 심하여 나무토막으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으나 오래된 나무토막이 썩어 무너진 곳도 있다. 등산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언덕길이지만, 먼동이 틀 때라서 그런지 오르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급히 내려가는 까치를 따라 20~30미터쯤 내려가 방향을 돌리는데, 몇 계단 아래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 황급히 달려가 보니 백발노인이 계단에 엎어져 있다. 모자는 벗겨지고 신발 한 짝도 반은 벗겨져 있다. 노인을 부축하여 평평한 계단에 누이면서 의식을 확인하니 답이 없다.

곧바로 119로 전화하여 위급상황의 위치를 알리니 전화를 끊지 말라고 한다. 119에서 지시하는 대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려고 하는데, 노인 어르신이 물을 달라고 한다. 119에 상황을 알려주니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란다. 구급대가 물을 가지고 출발했으니 쓰러지신 분과 대화를 계속하라고 한다.

통화 중 5분쯤 지나서 구급차가 도착하고, 구급대원이 장비를 가지고 올라와서 어르신을 안전하게 모시고 언덕 계단을 급하게 내려갔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며 아까의 그 까치를 찾았으나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계단에 쓰러진 그 노인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때 그 까치는 쓰러진 노인이 위급상황인 걸 어떻게 알았을까? 깍깍 소리가 정말 나를 따라오라고 한 소리였나? 까치를 따라가 보자는 생각은 어떻게 한 거지? 까치와 영적인 소통이라도 된 건가? 까치는 정말 영물인가? 나도 영물의 신통함을 믿는 건가? 답도 없는 상상을 하면서 산길을 걷는다.

우리나라에서 영물로 대접받는 까치가 외국에서도 길조로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가 흉조로 여기는 까마귀를 효성과 보은의 길조로 보는 나라도 많이 있다고 하는데, 나라와 지역, 인종과 종교 등에 따라 영물도 다르단다.

김전원 충북민실련 상임대표
김전원 전 청주교육장

만물의 영장靈長이라면서 사물이나 동식물의 영특함과 신통함에 감동되어 영물이라고 존경을 표하고 있는 게 참으로 우스꽝스럽겠지만, 어떤 소문난 영장들이 불안할 때 무속인을 찾는 건 박장대소할 일 아닐까? 그게 바로 영장의 영靈이 고이 간직하고 있는 비장의 무기임을 모르는 건 아닐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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