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경구 아동문학가

얼마 전이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정미선 선생님의 참 좋은 공간에 다녀왔다. 바로 공감문화교육센터 '엄마의 정원'이다. 뜰이 예쁜 곳이다.

선생님은 늘 에너지가 넘친다. 특히 내가 펴낸 책에 관심을 많이 갖고 응원해 주신다. 예전 불쑥 내 동시집 몇 권을 사왔다.

그러면서 책마다 사인을 부탁했다. 주변에 잘 아는 사람들에게 선물한다고 했다. 아마도 동시집과 함께 수다꽃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선생님과의 웃음꽃 대화는 즐겁고 때로는 힘이 되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몇 년 전 충주에서 서충주로 이사를 갔다. 그곳에 예쁜 작업장(?)을 만들었다. 건물은 작고 마당이 컸다. 선생님은 그곳에서 꽃과 관계된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웃음꽃까지 더하니 서충주에 꽃향기가 찰랑찰랑 가득할 것이다.

정원에는 많은 꽃들과 나무가 있다. 또 못난이 삼형제 같은 인형과 오리나 토끼 같은 동물 인형도 많이 있다.

정원에 선생님의 마음이 담뿍 들어간 것 같다. 선생님은 가끔 노을이 질 때 마당 한쪽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신다고 한다. 그럼 하루가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단다.

선생님의 정원을 보면서 내가 살고 있는 골목길의 아주 작은 정원(?)이 떠올랐다. 다섯 집이 살고 있는 작은 골목길은 시간이 지나면서 깨끗해졌다. 예전에는 뽕나무가 어찌나 큰 그늘을 만들어 주던지 그 아래 의자를 놓고 커피를 마시곤 했다. 가끔 책도 보며 새소리를 감상했다. 지금은 뽕나무 대신 매실나무와 라일락이 그늘을 만들어 준다.

골목 중간쯤 우리 집과 윗집 사이에는 20년 넘은 감나무가 있다. 해마다 주먹만 한 감을 주렁주렁 매달지만 올해는 힘든지 감꽃도 몇 개 안 보였다.

워낙 골목이 작다 보니 작은 풀꽃도 물도 주고 기른다. 올해는 냉이꽃도 피고 이름을 모르는 풀꽃도 많이 피었다. 요즘 아주 잘 크는 것이 있다. 바로 어릴 적 목벌 할머니 댁에서 먹었던 '쇄똥'이다. 정확한 이름은 잘 모르겠다. 난 '쌔똥'이라고 불렀다.

큰 양푼에 밥을 넣고 고추장을 듬뿍 넣어 개울가에서 뜯은 쇄똥을 넣고 썩썩 비비면 끝이다. 얼마나 맛있던지 비비면서도 침이 꼴깍 넘어갔다. 점심은 늘 그렇게 잘 먹은 것 같다. 그런 덕분인지 개학날이 되면 볼살이 통통하게 올라 어머니가 꽤 좋아했다. 나의 체중 늘리기에 쇄똥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요즘 골목을 오고 가며 쇄똥을 보면 어릴 적 여름방학이 많이 떠오른다. 어릴 적에는 한 뼘 반 정도 되었는데 골목에 쇄똥은 이대로 더 자라면 내 키랑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의 '엄마의 정원'을 쓱 보니 쇄똥은 없다. 대신 한 쪽에 개망초꽃이 피어있다. 자세히 정원을 보면 꼭 이야기가 연결되어 있는 듯싶기도 하다.

못난이 삼형제가 집을 나왔다가 오리 부부를 만나 냇가로 가는 것 같다. 꽥꽥 오리 부부는 예쁜 모자를 쓰고 신이 났다. 왜냐하면 그동안 심심했기 때문이다. 냇가에 가서 개구리 남매를 만난다. 노래를 엄청 잘하는 개구리 남매는 정원 노래자랑에 나가고 싶어 맹연습 중이다.

그런데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동생 개구리가 목소리가 잘 안 나온다. 이때다 싶어 고양이 남매가 야옹야옹 분홍 혀까지 내밀며 헉헉 노래를 부른다.

'엄마의 정원'을 한 바퀴 돌아보면 아주 작은 이야기들이 숨은그림찾기처럼 숨어 있다. 정말로 선생님은 엄마의 정원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참 좋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업하는 모습을 보면 더 잘 알 수가 있다. 주변 한 초등학교의 몇 어머님들에게 조금 먼저 엄마가 된 선생님은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눈맞춤 하면서.

수업 내용은 큰 화분에 준비된 식물을 심는 것이었다. 식물 이름과 특징을 하나하나 알려 주고 흙 넣은 법과 심는 법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수업참여자는 일곱 색깔 모래를 받고 작은 인형이나 곤충 같은 장식품을 선택했다.

선생님은 결혼하고 아내가 되고 바로 엄마가 되었단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엄마의 역할은 갈수록 어려운 게 많았단다. 아이가 좀 더 자라면 괜찮아지겠지 했지만 더 많이 바빠지고 해도 해도 늘 일이 쌓여 있었단다.

선생님은 오늘 엄마는 잠시 잊고 나만의 시간 속에서 무지개를 찾아보라고 했다. 화분에다 각자 선택한 식물을 여러 모양으로 심고 장식품으로 꾸몄다. 그리고 선생님은 자신의 작품에 이름을 써 보라며 작은 팻말을 주었다.

김경구 작가
김경구 작가

수업 참여자들은 '세 자매 행복해 지자', '사랑하는 우리 아빠의 정원', '고향길', '하하 호호 웃음 가득' 등 정원 이름을 지었다. 돌아가면서 자신의 정원을 설명했다. 웃고 울면서 어느 순간 모두 한마음이 된 것을 알았다. 나도 힘껏 박수를 치고 응원했다.

아마도 집으로 돌아가면서 마음의 정원도 하나씩 만들었을 것이다. 온 가족이 함께 할 또 혼자의 쉼이 될 정원은 등대처럼 삶의 빛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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