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맘때쯤 감자를 캐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부모님은 평생 농사를 지으셨지만, 그 일로 자식들에게 부담을 준 적이 별로 없다. 물론, 농사지을 땅이 많지 않아 두 분이 하시기에 충분했을지 모른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도 아버지는 함께 사시는 동반자와 농사를 지으면서 즐겁게 지내오셨다. 지난봄, 중증 환자가 되기 전까지.

그렇게 예상치 못했던 일상이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수술 후 회복이 더뎌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다. 큰 수술이기는 해도 비교적 초기 발견이라 다행이라던 의사의 말을 믿었지만, 아버지의 병은 결코 쉬운 놈이 아니었다. 농사일로 다져진 다부진 체력이 있었고 그 흔한 성인병 질환 하나 없던 아버지였지만 지금은 생전 처음 큰 병을 이겨내느라 눈이 퀭해지셨다.

면회가 제한되어 있어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의사나 간호사의 말에 의존해 기다릴 수밖에 없는 답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10시간이 넘는 수술을 하시던 날은 아버지도 아버지지만 의료진에 대한 존경심이 들었었다. 두세 시간 서서 강의 하고 나면 진이 빠지고 힘들어 한참을 쉬어야 하는데 장장 10시간 가까이 수술을 진행하는 의료진이 위대해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6시간 정도 걸린다는 수술이 10시간 가까이 진행되고, 경과가 좋지 않은 상황으로 흘러가기 시작해 검사를 진행할 때마다 말이 바뀌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존경은 의심으로 바뀌기 시작하고 온갖 못된 생각이 마음을 괴롭혔다. 수술실의 CCTV 설치나 정보 공개 등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더니 당장 내 가족의 일이 되고 보니 확인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었을까. 아니었겠지. 설령 무슨 일이 있었다 해도 그들이 최선을 다했을 것이란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내 부모 일이 되고 보니 합리적인 생각만 드는 건 아니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회복을 기다리며 남은 가족은 아버지의 일을 대체해야 하고 퇴원 후 아버지의 일상을 누군가 돕고 지원해야 한다는 부담이 남았다. 아버지가 건강하게 퇴원하시기만 한다면 이 정도쯤이야 라고 여기지만 정말 그럴까. 심어놓은 감자를 거두고 허리까지 자란 풀을 뽑아내면서 여섯 명이 해도 한나절이 걸리는 일을 앞으로 계속해야 한다면 어떨까. 하루 했다고 물집이 잡힌 손을 내려다보며 아버지 평생의 노동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일만 해 오신 아버지의 생에 대해 보답해야 하니 우선, 아버지의 쾌유를 기다린다.

주말농장처럼 다녀가더라도 누군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기고 농사일은 그렇다 치자. 퇴원 후 아버지의 일상을 챙기는 일은 또 다른 문제가 될 것이다. 수술실의 CCTV에 대한 생각만큼이나 의견이 겉돌던 '노인통합돌봄' 사업은 내 발등의 불이 되었다.

지금 다시 보니, 퇴원 후 노인의 일상을 의료와 건강관리, 돌봄서비스 연계를 통해 건강한 지역사회 노후 생활이 가능한 모델을 정립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나 지자체의 이야기가 겉돌고 허망하게 들린다. 그래서 아버지와 우리 가족은 이 혜택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한 달에 한두 번 병원 동행만으로 아버지 간병과 일상 지원이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결국 누군가 가족의 희생이 필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간호법에 대한 의견이 엇갈릴 때 남의 일처럼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의료기반이 없는 농촌 지역의 노인 의료지원과 돌봄을 위한 지역사회간호가 활성화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사회적 이슈에 민감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도 내 일이 아닌 것처럼 떠나보낸 모든 일이 내 일이 되니 마음이 달라진다.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일상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구나. 나와 내 가족의 상황이 아니라서 멀리 둘 것이 아니라 세상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진다. 이제 알았으니 우리 동네 노인 돌봄을 어떻게 해갈지 곰곰 생각해 봐야겠다. 노인복지 전공이 아니라며 미룰 일이 아니었다. 복지는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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