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경영 수필가

모든 행복과 불행은 어느 날 갑자기 삽시간에 다가온다. 일제의 그늘에서 애타게 조국의 독립을 고대하며 기다리던 그 날을 맞이했다. 간절히 바라고 그토록 목마르게 기다렸던 자유를 찾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해방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지 못하셨다. 선생님이었던 큰 누이가 모스크바대학으로 유학을 간다며 홀연히 사라진 것이다. 어수선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또 다른 세상을 향한 유토피아를 꿈꾸던 결정이었단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사이에서 고뇌하던 누이가 없어졌다. 소위 공부 좀 했다고 하는 지식인들의 잘못된 선택의 결과는 참혹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남은 가족들에게, 졸지에 빨갱이라는 주홍 글씨가 새겨진 것이다. 한 밤 중 쏘아대는 총소리에 놀라 정든 집을 뛰쳐나왔다.

큰 누이로 인해 온갖 고초를 겪으신 아버지는 할머니와 동생들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 야반도주를 했다. 약관의 나이에 온갖 날아오는 세상의 화살을 맨몸으로 감당하기가 힘들고 버거웠다. 졸지에 맏이가 된 아버지는 서울 변두리 피난민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에서 신분노출이 되지 않는 장사꾼으로 살아야만 했다. 온 가족의 생계를 도맡아야 했고, 할머니와 삼촌 둘은 평생 아버지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었다. 장남이라는 책임을 당연한 것이라 여기며, 성실하고 부지런한 삶을 온 몸으로 버텨내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가끔 어린 우리들을 앉혀놓고 말씀하셨다." 어느 날 갑자기 전쟁으로 이산가족이 되었을 경우, 당황하지 말고 어디서든 살아있으면 된다. 전쟁 끝나고 사회가 안정되면 중앙 일간지에 너희들을 찾는 광고를 낼 테니 주의 깊게 신문을 꼭 읽도록 해라. 그러면 우리 가족은 다시 만날 수 있다."며 만약을 위한 당부를 챙기셨다. 굴곡진 삶을 사신 어른으로서 충분히 생각하실 수 있는 대비책을 강조하셨던 것이다. 돋보기를 쓰지 않고도 아침 신문을 꼼꼼히 보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햇살에 일렁거린다.

아버지께서는 70년대 말 우리나라 건설 붐이 한참 일 때 해외파견 리비아근무를 지원하셨다. 까다로운 안기부 신원조회 실사를 마치고 휴우~ 긴 숨을 쉬셨다. 우여곡절 끝에 여권을 손에 쥐었다. 여권이 있다는 것은 이 사람의 가계(家系)와 사상(思想), 신분을 나라가 보증한다는 의미가 있던 시절이었다. 그날 밤 손에 든 여권을 보여 주시며

" 이제 다 됐다. 너희들의 미래는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데로 할 수 있고, 해외 나가서도 공부 할 수 있다." 그날은 아버지 생애에 정말로 기분 좋은 날이었다. 호탕한 웃음을 지시며 서랍 속에 보물을 간직하듯 작은 수첩 하나를 넣어두셨다. 마음속 불안과 염려를 내려놓고 희망의 끈을 잡은 것이다. 자녀들의 미래를 염려하셨던 아버지의 마음이 읽어졌다. 힘든 세월을 견디고 이겨내신 아버지의 승전가였다. 큰 가방을 들고 열사의 나라 이국땅으로 떠나 긴 이별을 했다. 그동안도 편지로 자녀 교육을 대신 하셨던 자상한 아버지. 사춘기시절 아버지와 주고받은 편지가 나를 성장 시켰고 내 인생의 중요한 가치관을 심어주었다.

이경영 수필가
이경영 수필가

평생동안 큰 병 한 번 걸리지 않고 건강하시던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해가 있던 자리에 조용히 자리를 내어주셨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 하시던 엄마까지 내게 맡기시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 달이 되어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 천국에서 만나자 말씀하시던 아버지는 그 곳에서 우리 가족을 기다리실 것이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일상의 그 자리가 너무나 큰 자리였음을 그땐 왜 몰랐을까? 어제 보이지 않던 것들이 오늘에서야 보이는 뒤늦은 깨달음이다. 지나간 것들은 마음속에 남겨진다. 아버지가 더욱 그립고 사무치게 보고 싶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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