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최시선 수필가·옥산중 교장

미호강 전경. /중부매일DB
미호강 전경. /중부매일DB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 쉽지는 않다. 이제 환갑 나이가 되어 뒤를 돌아보니, 인생길이 마치 물처럼 굽이쳐 흐르기도 했고 큰 산을 휘돌아 나가기도 했다. 여기까지 오기는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다. 사람이 그렇다. 살아온 길은 희미하게나마 그릴 수 있어도, 앞길은 캄캄하기만 하다. 하여, 늘 배우고 사색하며 스스로 가늠해 볼 수밖에 없다.

내가 사는 곳에 미호강이 펼쳐져 있다. 가끔 강변 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자전거로 달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물을 만난다. 물은 탁류지만 흘러가는 모습이 여유롭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물이 없으면 당장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물은 늘 내 곁에 있다. 푸르른 갈대나 나긋나긋한 억새도 잔뜩 물을 머금고 있다. 나무는 물론이고 하늘도 물을 품고 있다. 저 떠가는 구름이 지금은 구름이지만 언제 물이 될지 모른다.

미호강 작천보에 이른다. 작천보는 우리말로 하면 까치내이다. 까치내에 구조물을 만들어 물을 가두어 놓았다. 요즘, 이 작천보에 물이 가득하다. 미호강 맑은 물 사업으로 수량을 늘린 덕분이다. 작천보는 내가 걷거나 자전거를 탈 때 꼭 들르는 기착점이다. 언제나 가면 낚시꾼이 대를 드리우고 있고, 캠핑카가 즐비하다. 나는 난간에 기대어 흘러가는 물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공자의 모습을 떠올린다. 논어를 이십여 년 들여다보고, 최근 졸저'논어의 숲에서 사람을 보다'라는 책을 냈으니 물에서도 사람이 보인다. 그건 바로 군자의 모습이다.

논어 자한편 16장에 이런 장면이 있다. 공자가 어느 날 시냇가에 서서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마디 한다. '아, 흘러가는 것이 이 물과 같구나. 밤낮으로 그치질 않는구나.' 원문에'불사주야(不舍晝夜)'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이 주야장천이 되었고, 또 바뀌어 주구장창이 되었다. 주희는 이를 주석하면서 기막히게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다. 배우는 사람은 때때로 자기를 성찰하여 터럭만큼의 순간에도 끊어짐이 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맞다. 결국 군자가 되는 길은 저 흘러가는 물처럼 멀고 험난하다.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한다. 역시 논어에 나오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역동적이고 즐겁게 산다. 밝은 지혜를 가진 자는 어떤 위기와 어려움도 능히 건널 수 있다. 물은 가다가 온갖 위난을 겪어도 어떻게든 바다에 이른다. 늘 움직이기 때문이다. 고여 있으면 그건 물이 아니다. 흐르고 흘러야 물이다. 가다가 산을 만나면 휘돌아 나가고, 바위를 만나면 넘어서 간다. 추위를 만나면 얼어붙지만 얼음 속으로 흐른다. 그러니 물은 참 지혜롭다.

어디 그뿐인가. 겸손의 미덕까지 갖추고 있다. 알다시피, 노자는 도덕경에서 으뜸 되는 선은 물과 같다고 했다. 아,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 이쯤 되면, 물처럼 살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물은 지혜롭거니와 최고의 선이라고 하니, 누군들 물을 닮고 싶지 않겠는가. 물은 온갖 더러운 것을 씻어주면서도 가장 낮은 데로 흐른다. 그러면서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나를 알아달라거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함이 없는 무위요, 바람이 없는 무욕의 극치다. 큰일을 해 놓고도 물은 낮은 자세를 취한다. 아, 물의 아름다운 성품이여.

다시 작천보를 바라본다. 나도 물처럼 살 수 있을까. 앞으로의 삶이라도 저 물처럼 지혜롭게 살 수 있을까. 넓은 평지에서는 침묵하다가도,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는 소리를 내며 존재를 드러내는 그런 물 같은 삶 말이다. 또, 물처럼 낮은 자세로 살 수 있을까. 큰일을 하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태연할 수 있을까. 그건 내려놓는 자세요, 집착 없는 삶이다.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최시선 수필가·음성고 교장

결국, 논어 학이편 첫 번째 군자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그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는 사람이다. 논어 1호 군자다. 바로 물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다. 지혜와 겸손까지 갖춘 그런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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